딤후3:1-9절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말세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날부터 다시 오실 때까지를 말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지 벌써 2천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말세 중의 말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말세가 깊어 질수록 고통이 깊어질 것입니다.

고통의 근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자기 사랑과 돈을 사랑함은 모든 악의 뿌리가 되기에 제일 먼저 언급한 것입니다. 건강한 자기 사랑은 괜찮으나 잘못된 자기 사랑은 헛된 자랑과 교만에 빠지게 만들고 부모를 거역하고 감사하지도 않게 만듭니다. 왜곡된 자기 사랑은 비방을 낳습니다. 돈을 사랑함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되어 거룩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절)

이어지는 고통의 원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본능적인 애정마저 사라진 무정한 사회, 화해를 거부하며 앙심을 품은 원통함의 사회, 추한 말과 행동으로 모함하는 사회, 감정 컨트롤이 안 되어 마음 내키는대로 행동하는 무절제한 사회, 야만적이고 동물적인 기질로 짐승처럼 사나운 사회,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않고 어두운 것을 좋아하는 사회, 이같은 말세적 모습에서 고통은 필연적입니다.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배신하는 사회, 말과 행동에 경솔하고 분별력없이 조급히 행하는 사회, 자기 중심적인 삶으로 허세를 부리는 자만하는 사회,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 마음으로 쾌락을 사랑하는 사회에 고통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말세의 고통하는 때에 교회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교회는 종교적 경건의 모양만 갖춘 거짓 신앙을 철저히 경계하고 거짓 교사들이 교회에 침투하지 못하도록 막아 바른 신앙과 경건의 능력을 지켜내야 합니다.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거짓 이단의 교사들의 특징은 가만히 들어가 분별력이 없는 어리석은 여자의 욕심을 이용하여 죄짓게 만드는 것입니다.

“6 그들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어”

이단 사상은 바른 진리에 이를 수 없습니다.

“7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항상 새로운 것만을 추구하는 마음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미 하나님이 성경에 드러내신 바른 진리의 지식을 굳게 붙들고 그 진리에 따라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늘 새로운 것 만을 추구하는 사람은 이단에 빠지기 쉽습니다.

중요한 것은 바른 성경적 진리를 붙드는 것입니다.

“8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그들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림 받은 자들이라”

얀네와 얌브레는 모세가 바로 왕 앞에서 이적을 행할 때 거기에 상응하는 몇 가지 이적들을 일으키며 모세를 대적하였던 애굽의 요술사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의 이름은 구약 성경에는 직접 나오지 않지만 요나단 탈굼이나 외경, 기독교 초기 문헌 등에는 자주 나타납니다.

어느 시대에나 진리를 대적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마음이 부패한 자는 바른 진리를 거부합니다.

“9 그러나 그들이 더 나아가지 못할 것은 저 두 사람이
된 것과 같이 그들의 어리석음이 드러날 것임이라”

그러나 마침내 참과 거짓, 바른 진리와 거짓 교리가 드러나는 때가 옵니다.

바른 진리위에 세워진 믿음이 말세에 고통하는 때를 이기는 신앙입니다.

말세에 고통하며 신음하는 사회 속에서 고통을 잊게 하는 아름다운 성도의 삶을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성경일독 : 요한계시록 1-5장

댓글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