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12:35-44절
“35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새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서기관은 ‘글 書, 기록 記, 관리 官’ 율법을 복사(필사)하거나 연구하여 가르치는 전문 율법학자를 말합니다. 신약 시대에 ‘율법교사’로도 불리며 주로 바리새파에 속했습니다. 외식을 일삼고 백성을 그릇되게 지도하여 예수님께 책망을 받았습니다.
서기관들은 그리스도, 즉 메시야를 다윗의 자손으로만 가르쳤습니다. 이로인해 유대인들은 다윗 왕국의 영광을 회복할 정치적 메시야만을 기대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시편 110편을 인용하여 다윗이 메시야를 ‘주'(Lord)라고 부른 것을 일깨우시며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아들임을 가르치셨습니다.
“36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37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듣더라”
성경을 제대로 알게될 때 즐거움이 있습니다.
말씀을 듣는 즐거움, 깨닫는 즐거움이 있나요?
서기관들은 말씀의 가르침과는 반대로 살았습니다.
“38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39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40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서기관들은 자신들의 명예와 풍채를 자랑하기 위한 긴 옷을 즐겨 입었고, 랍비라는 소리를 들으며 시장에서 인사 받기를 좋아했습니다. 회당과 잔치 자리에서는 특별 대우를 받으며 윗자리에 앉기를 좋아했습니다.
겸손히 가르치며 참된 신앙으로 이끌어야 할 사람들이 인사받고 대접받는데만 익숙해지니 착취와 외식으로 나아갔습니다.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더욱 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의 시선보다 하나님의 시선을 중요합니다.
사람의 판단보다 하나님의 판결을 중요합니다.
많이 아는 것보다 길게 기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섬김입니다. 주를 향한 마음입니다.
주를 향한 마음은 헌금에서도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헌금생활에 관심이 있으십니다.
“41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42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헌금함은 성전 여인의 뜰 벽 맞은 편에 나팔 모양을 한13개가 놓여 있었습니다. 당시는 동전을 사용했기에 부자가 헌금함에 돈을 넣을 때는 촤르르
하고 소리가 많이 났습니다. 사람들이 쳐다 보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축복을 받은 사람으로 여겼을 것이고 본인도 자부심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난한 과부는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헌금함에 넣었습니다. 땡그렁하고 소리가 났을 것입니다. 두 렙돈은 노동자들의 하루 임금인 데나리온의 64분의 1의 가치였습니다. 시간당 20불을 가정할 경우 하루 8시간 일하면 일당이 160불입니다. 160불의 64분의 1이면 2불 50센트입니다. 부자들의 헌금에 비해 매우 적은 금액입니다. 두 렙돈을 헌금할 때 창피한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전혀 게의치 않고 자신이 가진 전부를 넣었습니다.
모든 것을 보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4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사람이 보는 기준과 주님이 보는 기준이 다릅니다.
가난한 중에도 주님께 마음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생활비 전부를 넣었다는 것은
전적으로 주님을 신뢰할 때만 가능합니다.
어떤 마음을 품고 헌금하고 있나요?
풍족할 때와 가난할 때 헌금의 모습이 달라지나요?
주님이 한결 같듯이 우리도 한결 같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전부되신 주님께 내 삶을 다 맡기고
감사함과 기쁨으로 주께 드리며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다 채워 주실 것입니다.
성경일독 : 왕상 12-14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