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5:27-39절

“27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28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세리 레위는 마태복음을 쓴 마태를 말합니다. 마태의 본명이 레위입니다. 세리는 유대인들로부터 창녀와 같은 죄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이는 이들이 로마 정부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동족 가난한 자나 부자를 가리지 않고 과다한 세금을 부과하여 잔액을 착복했기 때문입니다. 세리는 돈은 많이 벌었으나 동족에게 죄인 취급을 받아 마음 깊은 곳에서 그들의 죄에 대한 눌림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어떻게 예수님의 부르심에 마태는 단번에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를 수 있었을까요? 마태가 심령이 가난한 자였고 예수가 행하신 일로 예수에 대한 믿음과 자신의 죄인됨을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구원받은 마태는 예수를 위해 큰 잔치를 베풀고 동료 세리들과 이웃들을 초청했습니다.

“29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

자신이 만난 예수를 동료들과 이웃들도 만나게 하고 자신이 받은 구원을 이들도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 일을 삐딱하게 바라보고 비방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30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이에 예수님이 오신 이유를 밝히 말씀하십니다.

“3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이 땅에는 두 종류의 죄인만 있습니다.
자신이 죄인인 줄 아는 죄인과 자신이 죄인인 줄 모르는 죄인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땅에 두 종류의 병든 자만 있습니다.
자신이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병든 자와 자신이 병든 자라고 시인하는 병자입니다.

누가 고침을 받고 구원을 받을 자인가요?
자신이 병든 자임과 죄인 임을 아는 자입니다.

나는 마태와 같이 예수를 제대로 만난 자인가요?

예수님의 말씀에 회개로 반응하지 못하고 자신들을 건강한 자와 의인으로 여기던 그들은 예수를 또 걸고 넘어집니다.

“33 그들이 예수께 말하되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하되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
34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너희가 그 손님으로
금식하게 할 수 있느냐
35 그러나 그 날에 이르러 그들이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이들이 예수의 제자들을 요한과 바리세인의 제자들과 비교하며 예수님의 제자들을 불경건한 자들로 몰아가자 예수님은 혼인 잔치 이야기로 답변하십니다.

유대인의 혼인 잔치는 보통 일주일 동안 베풀었는데 이 잔치 마지막 날 신랑의 들러리를 맡은 친구들은 신랑을 신부방에 데려다 주고 잔치집을 떠납니다. 혼인하는 일주일 동안은 금식일이 닥쳐도 금식을 하지 않았다가 신랑을 신부방에 데려다 준 후 집에 돌아와서 금식에 들어갑니다. 예수님은 금식은 강제적이고 형식적인 것이 아님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이 예수님이 죽어서 제자들과 이별하게 될 때 제자들이 금식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내 입술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처럼 자기 의에 사로 잡혀 자주 남을 비난하고 비방하지는 않나요?

“36 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어울리지 아니하리라
3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못쓰게 되리라
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새 옷은 그리스도의 교훈을, 낡은 옷은 유대주의를 가리킵니다. 율법을 오해하여 가르친 유대주의와 그리스도의 복음이 하나될 수 없음을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시고 낡은 가죽 부대와 새 가죽부대를 예로 들어 한 번 더 강조하십니다.

형식과 위선에 치우친 유대교는 복음에 장애가 될 뿐만 아니라 율법의 진정한 의미도 훼손시킵니다.

마태가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른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전히 받아들이 위해서 낡은 옷, 낡은 가죽 부대는 버려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처럼 낡은 옷과 낡은 가죽 부대를 고집하며 붙들고 있지는 않나요?

마태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르기를 바랍니다.
이웃을 초청하여 구원의 기쁨을 나누는 자리를 자주 마련하기를 바랍니다.

성경일독 : 마가복음 13-1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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