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3:1-14절

“1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2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3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아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아르’는 ‘유아’에서 청년까지 부르는 말입니다. 대체로 ‘소년’을 뜻합니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이때의 사무엘의 나이를 12세로 봅니다. 히브리 사회에서 12세는 성년으로 간주하는 나이입니다.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란 엘리 제사장의 감독을 받으면서 성전 봉사를 했다는 뜻으로 사무엘이 본격적으로 희생 제사의 직무에 참여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다고 말씀합니다. 이는 그 당시 타락하고 부패한 영적 상황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입니다.

엘리 제사장 당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무관심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해야 할 성전과 엘리 제사장에게 조차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했다는 것은 그 당시 영적으로 얼마나 타락하고 부패했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시나요? 희귀한가요?

“4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5 엘리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는지라
그가 가서 누웠더니”

사무엘이 처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던 때에 어린 사무엘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말씀을 주시는 것은 행하실 일이 있다는 뜻입니다.

사무엘은 엘리가 부른 줄로 착각하여 찾아갔다가 엘리 제사장이 부른 것이 아님을 알고 다시 잠자리에 든 사무엘을 하나님이 다시 부르셨습니다.

“6 여호와께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일어나 엘리에게로 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대답하되
내 아들아 내가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니라
7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

하나님이 세번째 사무엘을 부르셨습니다.

“8 여호와께서 세 번째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일어나 엘리에게로 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엘리가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닫고
9 엘리가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하니 이에 사무엘이
가서 자기 처소에 누우니라”

하나님이 사무엘을 부르신 줄 엘리 제사장이 깨닫고 다시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하나님께 잘 반응하도록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우리가 보일 반응은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경외함입니다.

“10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니”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하나님이 행하실 일을 알리셨습니다.

“1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12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
13 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14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로나 예물로나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하셨더라”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은 엘리 제사장의 집에 대한 영원한 심판이었습니다.

죄를 알고도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멸시하며 하나님께 범죄하며 저주의 길을 가고,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도 않은 엘리 제사장의 집은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못하는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을 내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무엘이 처음 하나님께 받은 말씀이 자신이 따르는 엘리 제사장 가문의 멸망과 심판의 메시지였으니 얼마나 두렵고 떨렸을까요?

저주를 자청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저주를 자청하는 것을 금하지 않는 것도 죄입니다.

금해야 할 죄는 무엇인가요?
저주를 자청하고 있는 죄는 무엇인가요?

저주는 스스로 부르는 것입니다.
저주를 부르지 말고
축복을 부르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일독 : 삿 9-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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