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18:16-23절

“16 요압이 나팔을 불어 백성들에게 그치게 하니
그들이 이스라엘을 추격하지 아니하고 돌아오니라
17 그들이 압살롬을 옮겨다가 수풀 가운데 큰 구멍에
그를 던지고 그 위에 매우 큰 돌무더기를 쌓으니라
온 이스라엘 무리가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니라”

압살롬이 죽자 반역은 끝이 났습니다.
압살롬을 지지했던 무리가 다 도망갔습니다.

“18 압살롬이 살았을 때에 자기를 위하여 한 비석을
마련하여 세웠으니 이는 그가 자기 이름을 전할
아들이 내게 없다고 말하였음이더라 그러므로
자기 이름을 기념하여 그 비석에 이름을 붙였으며
그 비석이 왕의 골짜기에 있고 이제까지 그것을
압살롬의 기념비라 일컫더라”

압살롬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으나 모두 일찍 죽어서 자신의 이름을 전할 아들이 없자 압살롬은 자기를 위하여 스스로 비석을 세웁니다.

압살롬의 기념비는 그의 명예욕을 보여줍니다.
비석을 세운다고 명예롭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되고 아름다운 삶, 사람들의 깊은 감명과 칭찬, 하나님의 인정과 높여 주심이 참 명예입니다.

성경은 압살롬을 4년 동안 왕의 재판을 빼앗아 백성들의 마음을 훔친 후 반역을 일으킨 자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기록하는 압살롬의 모습은 거짓되고 허세 가득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자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압살롬의 삶은 전혀 명예롭지 못합니다.

세상의 명예보다 하나님의 칭찬을 구하길 바랍니다.
사람들의 평가보다 하나님의 인정을 구하길 바랍니다.
세상이 주는 상보다 하나님의 상급을 구하길 바랍니다.

무엇을 위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나요?

인생을 마감할 때, 어떤 평가를 받을 것 같나요?

“19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빨리 왕에게 가서 여호와께서 왕의 원수 갚아 주신
소식을 전하게 하소서
20 요압이 그에게 이르되 너는 오늘 소식을 전하는
자가 되지 말고 다른 날에 전할 것이니라 왕의
아들이 죽었나니 네가 오늘 소식을 전하지
못하리라 하고”

아히마아스는 주로 좋은 소식만을 전하는 전령이었습니다(27절). 아히마아스를 보면 다윗은 좋은 소식을 기대할 것입니다. 그러나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실망과 충격이 더욱 클 것이기에 요압은 아히마아스의 요청을 거부합니다.

요압은 구스 사람에게 소식을 전하도록 합니다.

“21 요압이 구스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본 것을
왕께 아뢰라 하매 구스 사람이 요압에게 절하고
달음질하여 가니
22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다시 요압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아무쪼록 내가 또한 구스 사람의 뒤를
따라 달려가게 하소서 하니 요압이 이르되 내
아들아 너는 왜 달려가려 하느냐 이 소식으로
말미암아서는 너는 상을 받지 못하리라 하되
23 그가 한사코 달려가겠노라 하는지라 요압이
이르되 그리하라 하니 아히마아스가 들길로
달음질하여 구스 사람보다 앞질러가니라”

요압의 만류에도 아히마아스는 자신이 제일 먼저 승전 소식을 전하고 싶어서 요압에게 거듭 요청합니다. 요압은 마지못해 허락하고 아히마아스는 지름길로 달려 구스 사람을 앞질러 갑니다.

전쟁의 승리의 소식은 다윗에게는 좋은 소식입니다.
그러나 압살롬의 죽음은 다윗에게 슬픈 소식입니다.

다윗은 전쟁의 승리의 기쁨보다 압살롬의 죽음의 슬픔이 더 컸습니다.

아히마아스는 다윗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다윗의 슬픔은 다윗을 지키기 위해 전쟁에 나간 병사들의 사기를 꺾는 일이었습니다.

군주는 개인의 감정보다 전체를 살펴야 합니다.

아히마아스는 다윗의 마음을 살피지 못했고
이후의 스토리를 보면 다윗은 자신을 위해 싸워준 병사들의 마음을 살피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헤아리고 있나요?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일독 : 잠언 16-18장

댓글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