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 5:1-14절
“1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큰 용사인데 나병환자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같아 보입니다. 크고 존귀한 자도 나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
전에 나아만을 통해 아람을 구원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나아만에게 나병이 난 것이 우연일까요?
우연이 아닙니다. 나병이 나지 않았다면 나아만은 엘리사를 찾아가지 않았을 것이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높이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낮추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낮추심은 하나님께 오라는 싸인입니다.
내 삶에 일어나는 일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깊은 섭리임을 인정하시나요?
(*섭리: 하나님께서 목적을 가지고 다스리심)
나아만 장군이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를 사로잡아 아내의 여종으로 삼은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2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3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아람 나라에서 크고 존귀한 나아만 장군이 나병에 걸렸으니 그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의원 찾고, 얼마나 많는 치료를 시도해 보았을까요? 많은 시도를 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아만 장군의 나병은 그대로였습니다.
이 어린 소녀 여종은 나아만 장군의 부인에게 나아만 장군이 사마리아에 있는 선지자(엘리사) 앞에 계시면 나병을 고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이 소녀는 엘리사가 행한 많은 이적을 들었기에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 앞에만 가면 나병을 고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긴 것 같습니다.
아내를 통해 그 소식을 들은 나아만 장군은 아람 왕에게 치료를 위해 사마리아로 가도록 요청했고 아람 왕은 흔쾌히 승낙합니다.
“4 나아만이 들어가서 그의 주인께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땅에서 온 소녀의 말이 이러이러하더이다
하니
5 아람 왕이 이르되 갈지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하더라 나아만이 곧 떠날새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6 이스라엘 왕에게 그 글을 전하니 일렀으되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의 나병을 고쳐 주소서
하였더라”
여기서 나아만 장군의 아내와 나아만 장군의 들을 귀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아만 장군의 아내는 어린 소녀 여종의 말을 무시할 수도 있었습니다. 나아만 장군 역시 아내가 그 말을 전할 때 핀잔을 주며 거절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아만 장군의 아내와 나아만 장군은 어린 소녀의 말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따르기로 한 것입니다.
나를 살리는 말을 귀담아 듣고 순종하고 계신가요?
나아만이 드디어 엘리사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7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와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 하니라
8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의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하니라
9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그런데 나아만 장군은 뜻하지 않는 지시를 받습니다.
“10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크고 존귀한 자가 왔는데 엘리사는 얼굴도 보이지 않고 나아만 장군이게 요단 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면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될 것이라고 사환을 통해 통보합니다.
나아만 장군이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선지자 엘리사가 직접 자신을 맞이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나병을 고칠 줄 알았습니다.
“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그것은 나아만 장군의 생각이었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자신의 생각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자 분노하며 발길을 다메섹으로 돌렸습니다.
“12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많은 경우 내 뜻대로 안되면 쉽게 분노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자존심도 명예도 다 내려 놓아야 합니다. 나아만 장군이 사람들 앞에서는 크고 존귀한 자일지 모르나 하나님 앞에서는 한낱 나병 환자일 뿐입니다.
나아만은 크고 존귀한 자가 아닌 나병 환자로 선지자 앞에 서야 했습니다.
하나님께 치유 받는 조건은 자신의 병듦을 인정하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입니다.
내 생각대로 안된다고 쉽게 분노하지는 않나요?
나아만 장군이 자존심을 내세워 그냥 되돌아가자 종들이 나서서 나아만 장군을 설득합니다.
“13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그러자 나아만 장군이 종들의 말을 듣고 요단 강으로 가서 엘리사가 말한대로 순종합니다.
“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순종했더니 나병이 낫고 어린아이 살 같이 환부가 깨끗해졌습니다.
요단강 물이 특별한 약효가 있어서 나은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순종했기 때문에 나은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능력이고 순종이 기적을 낳습니다.
들을 귀와 순종이 나아만을 치유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듣는 귀와 순종을 통해 나타납니다.
내 생각대로 살면 분노할 일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감사할 일이 넘칩니다.
내 생각대로 사시나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시나요?
내 생각을 내려놓고 말씀대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일독 : 눅 21-24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