겔 40:24-49절

“31 현관이 바깥뜰로 향하였고 그 문 벽 위에도
종려나무를 새겼으며 그 문간으로 올라가는 여덟
층계가 있더라”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환상 중에 보이신 새 성전은
사방으로 담이 있고 담 북, 동, 남쪽에 세 문이 있었습니다. 그 문을 오르는 일곱층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전 바깥뜰을 지나 성전 안으로 들어가려면 성전의 북, 동, 남문을 다시 통과해서 성전 안뜰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성전 북, 동, 남문의 층계는 여덟이었습니다.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려면, 이 세상과 그 가운데 있는 것들보다 좀 더 높이 올라가야 함을 보여줍니다.

(묵상)
하나님께 예배하러 나아갈 때, 준비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나아가지는 않나요? 하나님께 예배하러 나아갈 때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곱씹으며 나아가나요? 요즘 영상으로 집에서 예배를 드릴 때 예배하러 나가는 자세는 어떠한가요?
층계를 오르는 준비가 있기를 바랍니다.

“47 그가 또 그 뜰을 측량하니 길이는 백 척이요
너비는 백 척이라 네모 반듯하며 제단은 성전 앞에
있더라”

그 뜰은 성전 안 뜰로 번제단이 정 중앙에 놓여 있어서 제단뜰이라고도 부릅니다. 번제단은 제물을 불태워 드리는 단을 말합니다. 번제단은 예수님이 친히 우리의 화목의 번제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으신 희생을 보여줍니다.

놀라운 점은 성전 바깥 담의 북, 동, 남의 문과 성전 안 뜰의 북, 동, 남 문이 일직선상에 있기 때문에 이 문들이 모두 열리면 각 방향에서 정확히 제단이 보입니다. 이는 성전 담 밖에 있는 사람도, 성전 바깥 뜰에 있는 사람도, 성전 안 뜰에 있는 사람도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함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인 성소(the Holy Place)
와 지성소(the Most Holy Place)로 나아가려면 반드시 번제단의 희생을 통과해야 합니다.

(묵상)
나는 하나님을 만나 나의 소원을 들어주시기만을 구하며 번제단을 통과하지 않고 성소와 지성소로 들어가려하지는 않나요?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의 번제단에서 희생하신 예수님을 먼저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스펄젼(Charles H. Spurgeon) 목사님은 “천국은 메마른 눈으로는 못 가며 젖은 눈을 가져야만 들어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희생하신 예수을 바라보며 눈물 흘려보지 못한 사람이 어찌 하나님을 뵈옵고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성전 안뜰의 정 중앙에 번제단이 놓였듯이 우리 삶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이 우리 삶의 중심에 놓이기를 바랍니다.

“44 안문 밖에 있는 안뜰에는 노래하는 자의 방 둘이
있는데 북문 곁에 있는 방은 남쪽으로 향하였고
남문 곁에 있는 방은 북쪽으로 향하였더라”

성전 안뜰에 “노래하는 사람들” 을 위한 방이 있었습니다. 교회는 자신의 죄 때문에 죽으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늘 신음하고 통곡만 하는 곳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으로 죄 용서 받은 이들이 감격속에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노래가 가득한 곳이 또한 성전입니다.

(묵상)
입술에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찬송이 가득한가요? 마음의 방 중에 찬양의 방이 따로 준비되어 있나요?
하나님은 찬송 중에 계십니다.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시 22:3) 우리의 입술에 찬송이 끊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49 그 현관의 너비는 스무 척이요 길이는 열한 척이며
문간으로 올라가는 층계가 있고 문 벽 곁에는
기둥이 있는데 하나는 이쪽에 있고 다른 하나는
저쪽에 있더라”

제단을 지나 성전으로 들어가는 현관에 역시나 층계가 있고 현관 양쪽에 두 기둥이 있습니다. 역대하 3장 17절을 보시면 “그 두 기둥을 성전 앞에 세웠으니 왼쪽에 하나요 오른쪽에 하나라 오른쪽 것은 야긴이라 부르고 왼쪽 것은 보아스라 불렀더라”그랬습니다.
“야긴”은 ‘그가 세우리라’는 뜻이고, “보아스”는 “그에게 힘이 있다” 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시고 하나님의 권능으로 붙들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묵상)
교회를 나의 힘과 지혜로 세우려 하지는 않나요?
내가 교회를 다 떠받치고 있다는 생각을 하나요?
내가 떠나면 교회는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하나님의 교회에 기둥같은 인물로 쓰시는 사람은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신다’는 야긴의 고백과 ‘하나님에게 모든 능력이 계시다’는 보아스의 고백을 하는 자들입니다.

나는 층계를 밟으며 진지하게 예배로 나아가나요?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바라보나요?
나는 입술에 늘 찬송이 끊이지 않나요?
나는 교회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나요?

진지한 예배자, 예수 중심의 사람, 찬송의 사람, 하나님의 주인되심을 고백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전의 모습에 신앙의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역사적 성경일독 : 고린도후서 10-1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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