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3:1-9절

“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명백한 진리를 앞에 두고도 꾀임에 넘어갈수도 있음에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2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꾀임에 빠지기 전에 꼼꼼히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나를 꾀는 이야기가 맞는가 틀리는가를 말입니다.

바울은 그들이 체험한 바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 받은 것인지 오직 믿음에 근거해서 받은 것인지 확인해 보도록 합니다. 이것은 꾀임에 넘어가기 전에 반드시 확인했어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동안의 믿음의 여정과 확실한 증거들을 확인하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흔들 수 없는 내 안의 명백한 진리는 무엇인가요?

“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바울은 다시 한 번 그들의 어리석음을 책망합니다.

어떻게 시작했느냐 보다 중요한 것이
어떻게 마치느냐 입니다.

성령으로 시작했으면 성령으로 마쳐야 합니다.

성령으로 시작했다는 것은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음을 말하고, 육체로 마치겠느냐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 하는 것을 말합니다.

과거에 성령받은 일을 회상시킴으로써 원래의 복음 신앙을 회복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4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5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갈라디아 교인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얻는 복음을 지키기 위해서 그동안 유대주의자들 및 로마인들에게 많은 괴로움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런 괴로움을 겪었는지를 다 잊은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이 고난을 받은 것이 헛되이 받은 것이냐고 질책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짓 교사들의 꾀임은 판단을 흐리게 합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잊어버리게 합니다.

잊어야 할 것이 있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의 신앙의 여정에서 잊지 말아야 할 복음의 흔적, 예수의 흔적들은 무엇인가요?

“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거짓 교사들이 꾈 때에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들의 주장이 헛됨을 곧 발견하게 됩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만 생각해 봐도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15:6)라는 창세기에 말씀했기 때문입니다.

이방인들도 아브라함과 같은 방식으로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복을 받을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꼼꼼히 따져보면 꾀는 자들의 가르침이 얼마나 비성경적이고 근거가 없는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말씀의 빈약과 꼼꼼히 따져보는 지각의 부재로 갈라디아 일부 교인들처럼 거짓 이단들의 잘못된 가르침에 빠지는것입니다.

구원의 길은 신구약이 동일합니다.

신구약 성경이 말하는 진리로 무장하고 있나요?
생각하고 따져보는 신앙을 가지고 있나요?
다른 사람의 말에 쉽게 끌려가는 편인가요?

말씀에 뿌리를 깊이 내린 신앙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일독 : 시 143-14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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