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2:11-21절
“11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게바는 베드로를 말합니다. 베드로는 당시 초대교회에서 유력한 지도자 중 한 사람입니다.
바울이 베드로를 대면하여 책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베드로를 책망합니다.
복음을 수호하고 다른 형제들의 외식하는 신앙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식사를 하지 않습니다.
이방인들이 먹는 음식 중에는 부정한 음식이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장로들의 유전에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데, 이는 단순히 위생상 이유 뿐만이 아니고 이방 사람들과 접촉으로 부정하게 된 손으로 음식을 먹어 자신이 부정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이방인과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고 죄악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이런 이방인과 유대인의 장벽을 허물었습니다. 복음 안에서는 유대인과 이방인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이방인 그리스도인과 함께 식사하다가 예루살렘에서 사람들이 오자 예루살렘에서의 자신의 위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까 두려워 이방인들과 식사 자리를 떠난 것입니다.
이는 복음에 위배 되는 위선적인 행위였습니다.
이는 베드로의 위선에만 국한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는 당시 유력한 신앙의 지도자였기에 다른 이들의 신앙에도 안좋은 영향을 끼치고 복음에도
나쁜 영향을 주는 행동이었습니다.
“13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바울은 베드로가 바른 복음의 진리를 따르지 않은 것을 책망한 것입니다.
“14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베드로는 유대인으로서 율법에 매여 살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율법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이는 마치 율법에 자유로운 이방인처럼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방인과의 식사 자리를 피하므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유대인들의 유전을 따르도록 하는 우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복음을 왜곡시키는 중대한 잘못입니다.
바울은 지금 예수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을 수 없고,
할례와 같은 율법을 행위를 더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거짓 선생들의 가르침을 반박하는데 베드로의 행위는 바울의 반박에 친물을 끼얹는 행동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5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될 육체는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습니다.
예수를 진실되게 믿어 의롭게 되었다면 다시 죄인이 되는 일은 없습니다.
“17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드러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의롭게 된 후로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려는 것으로부터 자유를 얻었습니다.
이미 헐어버렸던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을
다시 세울 일은 없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배신행위요 범법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18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바울은 율법에 대해서 철저히 죽었다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께 대하여 살기 위해서입니다.
“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 얼마나 놀라운 고백입니까?
성도는 오직 예수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자들입니다.
나 자신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오직 예수가 내 안에 사는 자가 성도입니다.
의롭게 되는 것, 구원얻는 것, 죄 사함 받는 것 모두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율법을 행함으로 절대로 얻을 수 없습니다.
율법을 온전히 행할 육체는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럴 가능성이 0.00001%라도 있다면
예수는 십자가에서 헛되이 죽으신 것입니다.
“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은 헛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단번에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속죄를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마음이 아프지만 베드로를 공개적으로 책망한 것이고 다른 형제들의 위선을 막은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용기와 담대함과 복음에 대한 확신이 있기를 바랍니다.
혹시 베드로와 같은 위선을 범한 적은 없나요?
바울처럼 복음 안에서 확고하게 행한 적이 있나요?
복음에 확고히 서서 외식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나는 죽고 내 안에 예수가 살기를 바랍니다.
성경일독 : 시 140-142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