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2:1-10절

“1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나니
2 계시를 따라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제시하되 유력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갈라디아 지역에 1차 전도 여행을 하며 많은 핍박 중에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유대인 중에서 믿음으로만 구원 얻지 못하고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행15:1)

이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는 다른 복음이기에 바울이 달음질이 헛되게 될 중대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전한 그리스도의 복음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전한 복음이 동일한 복음임을 확증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갑니다.

달음질이 헛되지 않도록 진리위에 잘 서 있나요?

바울이 할례받지 않은 디도를 유력한 증인으로 데려갑니다. 복음에는 절대 양보가 없기 때문입니다.

“3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5 그들에게 우리가 한시도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 가운데 있게 하려
함이라”

복음에는 한시도 양보해서는 안됩니다.
진리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진리에 대해서는 쉽게 양보하면서 다른 일에는 쉽게 양보하지 않고 움켜 쥐려 하지는 않나요?

예루살렘 교회의 유력한 사도들이 바울에게 손들 들어 주었습니다. 구원 얻음에 있어서 믿음외에 다른 어떠한 다른 조건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6 유력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력한 이들은 내게 의무를
더하여 준 것이 없고”

예루살렘 회의에서 베드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행15:11절)

바울은 동일한 복음을 베드로는 유대인들에게 전하도록, 바울은 이방인에게 전하도록 예수님이 사도로 삼으셨다고 말합니다.

“7 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8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다른 사도들도 이에 동의했음을 말합니다.

“9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무엇이든지 공식적으로 합의된 것이 아닌 가만히 들어와서 은밀히 자신의 말을 전하는 자들은 잘못된 것을 전하는 자들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의 신앙은 공식적으로 합의된 내용에 근거하나요?
아니면 비공식적 루트로 전해진 내용에 근거하나요?

바울은 예루살렘 지도자들이 가난한 자들에 대한 구제를 부탁한 것에 대해 말합니다. 구제는 구원의 조건이 아닌 구원 얻은 자의 당연한 삶의 모습입니다.

“10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

신앙의 달음질이 헛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른 것은 양보해도 진리는 양보없기를 바랍니다.
항상 공식적인 신앙의 길에 서 있기를 바랍니다.

그 길이 가장 안전한 길입니다.

안전한 길 위에서 신앙을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성경일독 : 시 136-13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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