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6:1-12절

“1 내가 해 아래에서 한 가지 불행한 일이 있는 것을
보았나니 이는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이라
2 어떤 사람은 그의 영혼이 바라는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하나님께서 그가 그것을 누리도록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

많은 사람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소원을 들어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누림을 허락하지 않으실 때가 있습니다.

받는 것도 귀하지만 누리는 것은 더 귀합니다.

재물과 부요와 존귀가 하나님에게서 오듯
누림도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3 사람이 비록 백 명의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지라도 그의 영혼은 그러한 행복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또 그가 안장되지 못하면 나는
이르기를 낙태된 자가 그보다는 낫다 하나니
4 낙태된 자는 헛되이 왔다가 어두운 중에 가매
그의 이름이 어둠에 덮이니
5 햇빛도 보지 못하고 또 그것을 알지도 못하나
이가 그보다 더 평안함이라”

많은 자녀와 장수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외적 축복을 받아도 영혼의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죽어 평안히 묻히지 못하면 낙태된 자보다 못합니다.

외적 축복보다 영혼의 행복, 마음의 평안이 귀합니다.

영혼의 행복과 마음의 평안을 누리고 계신가요?

“6 그가 비록 천 년의 갑절을 산다 할지라도 행복을
보지 못하면 마침내 다 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
아니냐”

얼마나 오래사느냐보다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삶은 양보다는 질입니다.

장수하든 짧은 인생을 살든 죽음 앞에 동일합니다.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같은 하루 하루를 행복하게 사는 자가 복있는 사람입니다.

하루 하루의 행복은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7 사람의 수고는 다 자기의 입을 위함이나
그 식욕은 채울 수 없느니라”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라는 말을 종종합니다.
먹고 살기위해 사람들은 수고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욕구는 끝이 없습니다.
하나가 채워지면 다른 하나를 또 원합니다.

자족하는 인생이 행복한 인생입니다.

“8 지혜자가 우매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냐
살아 있는 자들 앞에서 행할 줄을 아는 가난한
자에게는 무슨 유익이 있는가”

만족을 모르는 욕구는 지혜자나 우매자나 동일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마땅히 취해야 하는 바른 행동을 아는 가난한 자도 내면에 감추어진 욕구는 동일합니다.

인간은 다 똑같습니다.

“9 눈으로 보는 것이 마음으로 공상하는 것보다
나으나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공상하는 것보다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이 낫지만 우리의 눈도 만족을 모릅니다. 익숙해지면 다른 더 멋있는 것을 보기를 원합니다.

자족하는 삶은 예수 안에 있습니다.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1-13)

자족하는 마음이 경건입니다.

“6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7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6-10)

자족하는 사람은 돈에 욕심내지 않습니다.
돈보다 믿음을 귀히 여깁니다.

예수 안에서 자족하며 살고 있나요?

“10 이미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오래 전부터 그의
이름이 이미 불린 바 되었으며 사람이 무엇인지도
이미 안 바 되었나니 자기보다 강한 자와는 능히
다툴 수 없느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은 조물주이신 하나님이 규정한 대로 일정한 질서와 법칙 안에서 움직입니다. 피조물이 조물주와 다투어 이길 수 없습니다.

자신이 피조물이요 유한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조물주 되시는 하나님께 나아갈 때, 인생의 참된 존재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조물주를 만날 때 그 분안에서 참된 행복, 평안, 만족을 맛보게 됩니다.

“11 헛된 것을 더하게 하는 많은 일들이 있나니
그것들이 사람에게 무슨 유익이 있으랴”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 여기저기 해메는 많은 일들은 헛된 것을 더할 뿐 인간에게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12 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 같이 보내는
일평생에 사람에게 무엇이 낙인지를 누가 알며
그 후에 해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을 것을 누가
능히 그에게 고하리요”

하나님 없는 인생은 헛된 생명의 날을 보낼 뿐입니다.
그림자같은 일생을 보낼 뿐입니다.
이들은 무엇이 진정한 낙(행복)인지 모릅니다.
죽음 이후에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얼마나 가련한 인생인가요?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과 상관없이 사는 모든 인생이 이와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흑암에 사는 백성들에게 빛을 주시기 위해서,
영생과 참된 행복을 주시기 위해서

예수 안에, 하나님 안에, 성령 안에
영생과 참된 행복이 있습니다.

이 진리는 전해져야 합니다.
이 진리를 모르는 사랑하는 가족에게, 친구에게, 이웃에게 전해져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꿈과 비전입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창12:3)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막16:15)

참된 행복을 맛보고 많은 이들을 참된 행복으로 초대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일독 : 마 15-1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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