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1:1-14절
“1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2 자매 압비아와 우리와 함께 병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노니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예수 복음 때문에 로마 감옥에 갇힌 바울이 감옥에서 복음으로 낳은 오네시모를 위해 빌레몬에게 편지를 씁니다. 빌레몬의 아내로 여겨지는 압비아와 사역자 아킵보와 빌레몬의 집의 가정교회 교인들에게도 편지를 공유하며 보냅니다.
빌레몬서는 1장으로된 서신이지만 빌레니몬 개인뿐 아니라 온 교회가 함께 교훈받고 실천해야 할 내용인 것입니다.
복음으로 변화된 오네시모를 위해 용서하고 형제로 받아줄 것을 편지로 쓰서 보내는 바울의 모습에서 한 사람을 향한 지극한 사랑을 봅니다.
한 사람을 위한 편지, 한 사람을 위한 변호, 한 사람을 위해 수고가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한 사람을 위해 수고와 헌신을 해 본 일이 있나요?
“4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5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6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
바울은 빌레몬이 지금도 사랑과 믿음에서 모범이 되고 있지만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선을 행함으로 그리스도께 이르는 더욱 깊은 신앙의 자리로 나아가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날마다 성장해야 합니다. 예수에 대한 사랑과 믿음은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과 믿음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이것이 참된 믿음의 교제입니다.
“7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노라”
성도들에게 평안함을 주고 많은 기쁨과 위로를 주는 사랑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온전한 사랑입니다.
나로 인해 근심하는 성도들이 많나요?
평안과 기쁨과 위로를 받는 성도들이 많나요?
“8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
9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10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명령보다 부탁이 더 힘이 있습니다.
부탁은 존중받는 느낌이 있습니다.
부탁은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마땅히 명할 수 있는 일도 부탁의 형태를 취하면 듣는 이가 기쁘게 응할 수 있습니다.
나의 어투가 명령조인가요?
상대방을 존중하는 부탁 조인가요?
“11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12 네게 그를 돌려 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
13 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14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
복음은 사람을 변하게 합니다.
무익한 자를 유익한 자가 되게 합니다.
오네시모는 복음을 통해 유익한 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편지한 장 써서 보내고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빌레몬을 대신하여 섬기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선한 일이 억지같이 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선한 일은 자의로 행해야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번거롭지만 바울은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직접 보내 용서를 구하게 하고 빌레몬의 용서와 보냄을 받고 다시 돌아와 자신을 섬기게 하는 것이 옳다고 여겼기에 빌레몬서 편지와 함께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보낸 것입니다.
번거롭다고 거쳐야 할 일들을 생략하지는 않나요?
선한 일을 상대방의 승낙없이 진행하지는 않나요?
자의로 할 수 있는 일을 억지로 하게 만들지는 않나요?
돌아가는 길이 맞다면 시간이 걸려도 그것이 옳습니다.
선한 일을 억지같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선한 일을 승낙없이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선한 일을 선한 방법으로 해야 아름답습니다.
성경일독 : 눅 6-8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