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32:1-14절

“1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모세가 시내산으로 들어가 40일 동안 내려오지 않자
자신들의 눈에 보이는 지도자 모세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론에게 자신들을 인도할 눈에 보이는 신을 만들라고 요구합니다.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낸 것은 모세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은 하나님이신데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친히 강림하시어 음성으로 십계명을 주시며 다른 신을 두지 말고 아무 형상으로든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건만 이들은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은 벌써 잊은 것입니다.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출20:19)

이렇게 고백했던 그들이었는데 시내산에서 만난 하나님은 다 잊어 버리고 다시 자신들의 옛모습으로 돌아가고 만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있나요?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온전히 붙들고 있나요?

“2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3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
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성막과 그 기구를 만드는 데 쓰여야 할 금 고리를 우상을 만드는 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올바른 말씀 중심의 신앙을 갖지 않으면 하나님이 주신 물질을
나의 우상을 만드는데 쓰게 됨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아론은 벡성에게 거둔 금 고리로 금 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이것이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낸 신(여호와)이라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을 송아지로 형상화한 것은 하나님을 송아지의 차원으로 격하시킨 것입니다. 십계명의 제 2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5 아론이 보고 그 앞에 제단을 쌓고 이에 아론이
공포하여 이르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6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자신이 만든 금송아지 앞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절일’이라고 공포하고 금송아지 앞에 제사드리며 먹고 마시고 뛰는 모습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음주, 가무, 부도덕한 성행위로 이루어진 이방우상문화가 떠오르지 않습니까? 이들은 애굽에서 보아 왔던 대로 ‘여호와의 절일’이라는 타이틀만 걸어 놓고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론은 눈에 보이는 신을 요구하는 백성들의 기세가 폭력으로 연결될 기미가 보이자 그동안 억제해 왔던 환락을 여호와의 절일이라는 이름으로 허용하여 무마시키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우리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을 강요하지는 않나요?

타이틀보다 말씀대로가 중요합니다.
자기 방식대로 섬기는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8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예배하며 그것에게 제물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9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아니 계시거나 우리에게 무관심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십니다.

그들의 우상숭배는 부패의 결과요, 농부의 말을 잘 듣지 않는 고집이 센 소나 말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뻣뻣함과 완고함의 결과입니다.

“10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11 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12 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13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주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14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얼핏보면 하나님은 성미가 급하시고 모세는 마음이 넓고 이해심도 많고 이스라엘 백성을 끔직히 사랑하는 지도자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이 모세보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덜 사랑하시는 걸까요? 모세가 하나님보다 더 온유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의 반응을 시험하심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릴 화를 거두십니다.

모세의 온유와 하나님의 긍휼하심의 결과입니다.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약 1:20)

다른 사람의 죄를 보고 어떻게 반응하고 있나요?

상대방이 답답하고 더디고 때론 어긋난 모습을 보일 때, 참고 인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온유와 긍휼로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일독 : 롬 2-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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