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19:28-40절

“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

지금 예수님이 가시는 예루살렘은 죽으러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앞서서 가시더라’고 했습니다. 죽음의 길을 향해 당당히 나아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봅니다. 그 길은 우리를 살리시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스가랴 9장 9절의 예언을 이루시려고 제자 둘을 보내어 나귀 새끼를 가져 오도록 합니다.

<슥 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29 감람원이라 불리는 산쪽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30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예수님은 구원을 베푸시기 위해 겸손한 왕의 모습으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나귀 새끼의 주인은 주를 위해 기꺼어 자신의 나귀를 내어 주었습니다.

“31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말하기를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
32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가서 그 말씀하신 대로
만난지라
33 나귀 새끼를 풀 때에 그 임자들이 이르되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
34 대답하되 주께서 쓰시겠다 하고
35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36 가실 때에 그들이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말을 타고 입성하는 다른 왕들에 비해 대단히 초라해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군림하는 왕이 아닌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오신 왕이심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나아가시는 길과 내가 추구하며 나아가는 길이 일치하는 것 같아요?

“37 이미 감람 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38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예수님께서 그동안 행하신 일을 목격한 사람들은 기뻐 소리치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온전한 찬양을 하나님께 올릴 수 있고 예수님을 통해서만 온전한 평화를 누릴 수 있음을 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찬양을 막아섰습니다.

“39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40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은 멈추면 안됩니다.
그러면 돌들이 소리치며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행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본 사람은 큰 소리로 기뻐하며 찬양해야 합니다.

불평, 비난, 한탄, 원망의 소리가 아닌 찬양의 소리만이 우리의 입술이 가득하여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올려드릴 찬양은 무엇인가요?

오늘도 온 종일 입술에 찬양이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일독 : 히 12-1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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