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20:9-18절

“9 그가 또 이 비유로 백성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하시니라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본토에 토지를 소유하고 외지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이나 로마인들은 관리자나 종에게 세(lease, rent)를 주고 자신의 재산을 관리하도록 했습니다. 우리가 렌트집에 살 때 집의 주인은 따로 있듯이 집의 소유권은 집 주인에게 있습니다. 집 주인이 들어와서 살겠다고 하면 집을 내주고 나가야 합니다.

한 주인이 포도원을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서 오래 나가 있었습니다. 주인이 세(렌트비, 리스비)를 받기 위해 종을 보냈는데 세는 내지 않고 세를 받으러 온 종들을 때려서 돌려보냈습니다.

농부들은 주인이 타국에 오래 있다보니 마치 자신들이 포도원 주인인 줄 착각하게 된 것입니다. 자기 것인냥 모든 소출을 자기 것으로 여기고 세를 내지 않으려는 것은 도둑질이고 강도질입니다.

“10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몹시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이런 강도짓이 어디 있습니까? 주인이 자신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소득이 생기게 해 주었으면 일을 맡겨준 주인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응당 기쁜 마음으로 즐겁게 세를 내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오래도록 타국에 있다보니 주인의 은혜는 다 잊어버리고 주인 행세를 하며 주인이 보낸 종을 몹시 때리고 거져 보낸 것입니다.

이 비유는 모든 인생들에게 주시는 비유입니다. 주인은 하나님이시요, 농부들은 인간입니다. 우리가 누리고 사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은혜입니다. 이러한 은혜를 받은 자들은 당연히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마땅한 보답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나의 생명도, 재산도, 자녀도, 사업도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우리는 청지기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생명도 재산도 자녀도 사업도 가정도 직책도 잘 관리하며 주인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누리는 모든 것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나요? 자신들의 신분을 망각한 농부들처럼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것을 내 것으로 취하고 있지는 않나요?

주인되시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계속 종들을 보냈습니다.

“11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도 몹시 때리고 능욕하고
거저 보내었거늘
12 다시 세 번째 종을 보내니 이 종도 상하게 하고
내쫓은지라”

하나님이 보내신 종들은 선지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나의 종 선지자들을 꾸준히 보내 그들의 말을 순종하라고 하였으나 너희는 순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렘26:5)

“내가 나의 모든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되 끊임없이 보내어 이르기를 너희는 내가 미워하는 이 가증한 일을 행하지 말라 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다른 신들에게 여전히 분향하여 그들의 악에서 돌이키지 아니하였으므로 나의 분과 나의 노여움을 쏟아서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를 불살랐더니 그것들이 오늘과 같이 폐허와 황무지가 되었느니라”
(렘44:4-6)

하나님께서 그 종 선지자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끊임없이 보내심은 그들이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처음 보낸 종을 몹시 때리고 빈 손으로 돌려 보냈을 때에 주인은 곧바로 농부들에게 와서 그들을 벌하고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빼앗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기회를 여러 번 주셨습니다.

‘호의가 계속되면 그것이 권리인 줄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호의에 감사할 줄 알고 보답할 줄 아는 것이 마땅한데 호의를 마치 자신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인 줄 착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기회, 호의는 무엇인가요?
그것이 대해 나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나요?

포도원 주인은 최후 수단으로 그의 아들을 보냈습니다.

“13 포도원 주인이 이르되 어찌할까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혹 그는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하나님께서 모든 선지자들을 보내고 난 후 마지막에 그의 아들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농부들은 포도원 주인의 아들을 죽일 계획을 논의 합니다. 마치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를 즉이려 한 것과 같이 말입니다. 주인의 아들을 죽이면 포도원이 자신들의 것이 될 줄 안 것입니다.

“14 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산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15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농부들의 생각은 큰 착각이었습니다.

“16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시니 사람들이 듣고 이르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거늘”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거부하고 능욕한 자들의 결말은 진멸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이해했는지 사람들은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그렇게 되지 말지이다”라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은 멸망을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멸망 받을 자의 모습을 하며 사는 이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피할 유일한 길은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 예수를 나의 구주로 모시는 길 뿐입니다.
또한 그동안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그 은혜에 보답하며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추가적인 말씀을 주십니다.

“17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냐
18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는 말씀은 1차적으로 건축자의 잘못된 판단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고, 다른 의미는 좋은 돌은 한때 버려졌을지라도 다시 발견되어 머릿돌로 쓰여진다는 필연성을 강조한 말씀입니다.

건축자는 주인의 종과 아들을 배척하고 죽인 농부들과 이스라엘의 종교.정치 지도자들과 불신앙적인 유대인들을 말합니다. 버린 돌은 예수님을 뜻합니다.

이들에 의해서 버림받고 죽임을 당한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머릿돌, 인류의 머릿돌이 되셨습니다.

18절의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의 준엄함을 보여줍니다.

항아리가 돌 위에 떨어지면 산산이 부서지듯이 사람도 산산이 부서져 파멸에 이른다는 말씀입니다. 항아리가 돌 위에 떨어지는 것과 반대로 돌이 사람위에 떨어지면 사람을 가루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그 강도가 훨씬 쌜 것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심판의 날에 예수님은 친히 불로 무서운 심판을 행하실 것입니다.

현재의 삶에 눈이 어두워 마지막 심판을 잊고 주인 행세하다가 낭패를 보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삶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도 충성스러운 청지기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일독 : 벧후 1-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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