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1:22-36절

“22 요셉 가문도 벧엘을 치러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니라
23 요셉 가문이 벧엘을 정탐하게 하였는데 그 성읍의
본 이름은 루스라
24 정탐꾼들이 그 성읍에서 한 사람이 나오는 것을
보고 그에게 이르되 청하노니 이 성읍의 입구를
우리에게 보이라 그리하면 우리가 네게
선대하리라 하매
25 그 사람이 성읍의 입구를 가리킨지라 이에 그들이
칼날로 그 성읍을 쳤으되 오직 그 사람과 그의
가족을 놓아 보내매
26 그 사람이 헷 사람들의 땅에 가서 성읍을 건축하고
그것의 이름을 루스라 하였더니 오늘까지 그 곳의
이름이 되니라”

치열한 삶의 전투의 현장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하나님과의 동행에 있습니다.

요셉 가문이 벧엘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요셉 가문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를 받되 자신이 해야할 일은 최선을 다하는 것을 말합니다.

2024년 하나님과의 동행을 최우선에 두기 바랍니다.

요셉 가문은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칠 때에 정탐꾼을 보냈던 것처럼 정탐꾼을 보내 벧엘을 정탐하게 했고, 여리고 성 함락 때 라합이 정땀꾼을 도왔듯이 한 사람의 도움을 받아 벧엘의 비밀 입구를 알게 됩니다. 그 입구를 통해 요셉 가문은 벧엘을 쳐서 승리할 수 있었고 비밀 입구를 알려준 사람 그의 가족은 벧엘이 하나님의 심판받을 때 구원을 받게 됩니다.

라합이나 벧엘의 비밀 입구를 알려준 한 사람은 그들 동족의 입장에서는 배신자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관점에서 보면 이들은 불신앙과 하나님을 대적으로 멸망하는 길을 서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며 믿음의 편에 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편에 서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과 가족을 살리는 길입니다.

결정적 순간에 어느 편에 서시나요?

“27 므낫세가 벧스안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다아낙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돌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이블르암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므깃도와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들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더니
28 이스라엘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족속에게
노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
29 에브라임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게셀에서 그들
중에 거주하였더라”

가나안 정복은 그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 일을 수행하는 자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요셉의 가문인 므낫세와 이브라임이 벧엘은 정복했으나 벧스안, 다아낙, 돌, 이블르암, 므깃도,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자 그들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하고 글 중이 거주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족속을 진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16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17 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령하신 대로 하라 18 이는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을 너희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게 할까 함이니라”(신명기 20:16-18장)

그런데 전체적인 승기를 잡았다고 여긴 이스라엘 지파들은 이 정도는 살려줘도 되겠지라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살져주고 노역을 시키면 여러 면에 이득이 될것으로 판단하여 자신들 생각대로 했습니다.

요셉 가문이 그렇데하자 다른 지파들도 같은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30 스불론은 기드론 주민과 나할롤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가나안 족속이 그들 중에
거주하면서 노역을 하였더라
31 아셀이 악고 주민과 시돈 주민과 알랍과 악십과
헬바와 아빅과 르홉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32 아셀 족속이 그 땅의 주민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였으니 이는 그들을 쫓아내지 못함이었더라
33 납달리는 벧세메스 주민과 벧아낫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그 땅의 주민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였으나 벧세메스와 벧아낫 주민들이
그들에게 노역을 하였더라”

요셉 가문의 잘못된 행동은 스불론, 아셀 지파에도 영향을 끼쳤고, 아셀과 납달리 지파는 오히려 가나안 족속에게 주도권을 빼앗기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스불론과 아셀 지파의 경우 가나안 족속이 그들 중에
거주한 것으로 언급하나, 아셀 및 납달리 지파는 오히려 그들이 가나안 사람 가운데 거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셀과 납달리 지파의 지경 내에서는 오히려 가나안 사람들이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아셀과 납달리 지파가 그들에게 어떤 영향력도 발휘할 수 없었습니다.

단 지파는 더 합니다. 단 지파는 아모리 족속에게 오히려 쫒김을 당합니다. 아모리 족속은 단 지파 자손을 산지로 몰아넣고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께서 단 자손에게 주신 땅에서 주인 행세를 합니다.

“34 아모리 족속이 단 자손을 산지로 몰아넣고
골짜기에 내려오기를 용납하지 아니하였으며
35 결심하고 헤레스 산과 아얄론과 사알빔에
거주하였더니…”

요셉 가문이 강성하여 아모리 족속에게 노역을 시키기는 합니다.

“35 …요셉의 가문의 힘이 강성하매
아모리 족속이 마침내는 노역을 하였으며
36 아모리 족속의 경계는 아그랍빔 비탈의 바위부터
위쪽이었더라”

요셉 가문이 아모리 족속에게 노역을 시켰지만 아모리 족속은 자신들 만의 경계를 가지고 가나안 땅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자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시와 올무가 되었습니다.

‘이만하면 됐지’라는 안일한 태도가 주변에 악영향을 끼치고 더 나아가 하나님이 주신 축복까지 빼앗기는 불행을 초래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안일하게 대처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하나님과 동행하며 매사에 확실한 입장을 취하며 나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성경일독 : 창 7-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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