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20:12-23절

“12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증언하시거니와 내가 내일이나 모레
이맘때에 내 아버지를 살펴서 너 다윗에게 대한
의향이 선하면 내가 사람을 보내어 네게 알리지
않겠느냐
13 그러나 만일 내 아버지께서 너를 해치려 하는데도
내가 이 일을 네게 알려 주어 너를 보내어 평안히
가게 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나 요나단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여호와께서 내 아버지와 함께 하신 것 같이 너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니”

요나단은 다윗에 대한 아버지 사울 왕의 의향이 선하든지 해하려는 마음이 있든지 알려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면서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여호와께서 내 아버지와 함께 하신 것 같이 너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니”라는 표현에서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 왕에게는 완료형을 써서 과거에 하나님이 함께 하셨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말하고, 다윗에게는 미완료 시제 즉 미래형을 사용하여 지금부터 앞으로 계속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실 것을 바라고 확신하는 표현을 썼습니다.

요나단은 이스라엘의 왕권이 아버지 사울에서 다윗에게로 넘어갔음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나단은 다윗에게 자신과 자신에 집에 대한 안전에 대해 언약을 요청합니다. 당시 근동지방에는 축출된 왕조의 가족들이 새로운 왕에 의해 몰살되는 풍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4 너는 내가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내게 베풀어서 나를 죽지 않게 할 뿐 아니라
15 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
버리신 때에도 너는 네 인자함을 내 집에서 영원히
끊어 버리지 말라 하고
16 이에 요나단이 다윗의 집과 언약하기를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대적들을 치실지어다
하니라”

요나단은 혈육의 편이 아닌 하나님의 편에 섰습니다.
불의가 아닌 정의의 편에 섰습니다.

요나단은 굳이 다윗에게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됐습니다. 아버지 사울의 길을 따라 가며 다윗을 제거하고 자신이 왕위를 물려 받는 길을 택해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길이었습니다.

그 길이 성공할 리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편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사울 왕이 가는 길은 굽은 길입니다.
요나단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택했습니다.

요나단은 하나님의 뜻이 항상 우선이었습니다.

나의 삶에 우선 순위는 무엇인가요?

다윗과 요나단은 신앙 안에서 생명 같이 사랑하는 우정 관계였습니다.

“17 다윗에 대한 요나단의 사랑이 그를 다시 맹세하게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 같이 그를
사랑함이었더라”

요나단은 다윗과 사울왕의 의향을 확인하는 싸인을 정합니다.

“18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내일은 초하루인즉 네
자리가 비므로 네가 없음을 자세히 물으실 것이라
19 너는 사흘 동안 있다가 빨리 내려가서 그 일이
있던 날에 숨었던 곳에 이르러 에셀 바위 곁에
있으라
20 내가 과녁을 쏘려 함 같이 화살 셋을 그 바위 곁에
쏘고
21 아이를 보내어 가서 화살을 찾으라 하며 내가 짐짓
아이에게 이르기를 보라 화살이 네 이쪽에 있으니
가져오라 하거든 너는 돌아올지니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평안 무사할
것이요
22 만일 아이에게 이르기를 보라 화살이 네 앞쪽에
있다 하거든 네 길을 가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셨음이니라”

요나단의 중심에는 늘 여호와 하나님이 있었습니다.
요나단의 말은 하나님 중심의 언어입니다.

“23 너와 내가 말한 일에 대하여는 여호와께서 너와 나
사이에 영원토록 계시느니라 하니라”

하나님을 중심에 모신 사람은 늘 신실합니다.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집니다.

나의 언어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나요?
하나님과 진실이 있기를 바랍니다.

언어가 길을 정합니다.

성경일독 : 역대하 4-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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