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 19:11-21절

“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엘리야가 모든 바알 선지자들을 죽인 것이 이세벨에게 알려지자 이세벨은 엘리야를 죽이려했고 엘리야는 광야로 도망칩니다.

광야로 도망친 엘리야는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하나님께 죽기를 청합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그리고 엘리야는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잠이 듭니다.
잠든 엘리야를 천사가 엘리야를 어루만지며 말합니다.

“일어나서 먹으라”

엘리야가 깨어보니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먹고 다시 누웠습니다.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집니다.
그리고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고 말합니다.

엘리야가 다시 일어나 먹고 마시고 힘을 얻어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릅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늘에서 불이 내리는 응답을 받고, 바알 선지자 450명을 모두 죽인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왕후 이세벨이 자신을 죽이려 하자 도망가서 하나님께 죽기를 청한 것입니다.

어제의 용사가 오늘의 비겁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영원한 용사는 없습니다.
영원한 비겁자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비겁한 엘리야의 모습에 실망하시거나 자신을 죽여 달라고 말한 엘리야를 책망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천사를 보내어 떡과 물을 공급하시고 위로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사명의 길을 가게 하셨습니다.

지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질타가 아니라 위로입니다.
위로하여 다시 사명의 길을 가게 하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하나님의 산 호렙의 굴에 들어가 머물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했습니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9)

엘리야가 하나님께 속 마음을 토로합니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열심인 사람이 영적 탈진을 겪을 때가 많습니다.

엘리야는 다른 선지자들은 다 죽고 자신만 남은 줄 알았습니다. 자신마져 죽이려하자 도망친 것이라고 말합니다.

엘리야는 영적 고립감을 느낀 것입니다.

영적 고립감에 빠지자 엘리야는 오바댜가 숨겨 놓은 100명의 선지자가 있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7천 명의 순결한 자를 남겨 놓으신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영적 탈진이 올 때 주변에 하나님이 남겨두신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영적 탈진을 겪고 계신가요?
하나님의 위로가 임하시기 바랍니다.

영적 고립감을 느끼고 있나요?
하나님이 남기신 신실한 사람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굴에 숨은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그러자 여호와께서 엘리야 앞을 지나가셨습니다.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이 오늘 11절 말씀입니다.

“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하나님은 불 가운데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세미한 음성 가운데 계셨습니다.

“13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하나님의 임재를 확인한 엘리야는 겉옷으로 얼굴을 가라고 나가 굴 어귀에 섭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두번 째 동일한 말씀을 주십니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이는 엘리야에게 사명을 일깨우는 말씀입니다. 엘리야에게 아직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었습니다.

사명자는 죽지 않습니다. 아니 죽을 수 없습니다.
왕후 이세벨도 손댈 수 없습니다.

영적 탈진이 올 때,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하나님의 사람에게 낙심과 절망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있어야 할 곳은 사명의 자리입니다.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

“14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엘리야는 10절에서 한 대답을 다시 합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도 아직도 두려움과 절망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구체적 사명을 주십니다.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16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17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하나님께 사명을 받은 엘리야는 두려움과 낙심과 절망의 자리를 떠납니다.

“19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그가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두째 겨릿소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절망을 이기는 길은 하나님을 만나 다시 사명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우리의 존재 이유는 사명입니다.

엘리야는 엘리사를 만나 자신의 겉옷을 던집니다.
겉옷은 그 사람의 직무를 나타냅니다. 엘리야가 자신의 겉옷을 엘리사에게 던져준 것은 엘리사에게 자신의 직무를 대신하라는 것을 뜻합니다.

“20 그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하건대 나를 내 부모와 입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리이다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21 엘리사가 그를 떠나 돌아가서 한 겨릿소를
가져다가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엘리야를 따르며
수종 들었더라”

엘리사는 부모와의 작별 인사를 엘리야에게 청했고 엘리야는 흔쾌히 허락합니다. 엘리사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과 작별의 식사를 하고 엘리야를 따르고 수종듭니다.

주의 일은 하나님의 부르심에서 시작됩니다.

주님이 부르실 때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사명자의 길입니다.

사명의 길을 걷고 있나요?

아직도 머뭇거리고 있나요?

사명자에게 절망은 없습니다.

성경일독 : 학개 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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