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 15:32-16:6절

“32 이스라엘의 왕 르말랴의 아들 베가 제이년에 유다
왕 웃시야의 아들 요담이 왕이 되니
33 나이가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육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루사라
사독의 딸이더라
34 요담이 그의 아버지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35 오직 산당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요담이 여호와의 성전의 윗문을 건축하니라”

북 아스라엘 왕 베가 때에 요담이 남 유다의 왕위에 오릅니다. 요담은 아버지 웃시야가 초기에는 잘 했으나 나라가 부강해지고 평안해지자 교만해져 제사장만이 행할 수 있는 분향을 하려다가 여호와의 징계를 받아 나병에 걸려 남은 여생을 별궁에서 홀로 지내다가 죽은 후에도 조상들의 묘실에 묻히지 못한 것을 곁에서 지켜 보았습니다.

그래서 요담은 초기 아버지 웃시야의 모습처럼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습니다. 그러나 오직 산당을 제거하지 않아 백성들이 여전히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했습니다.

대하 27:2절에서도 이점을 지적합니다.
“요담이 그의 아버지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나 여호와의 성전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고 백성은 여전히 부패하였더라”

요담이 성전에 들어가지 안했다는 것은 성전 제사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아버지에게 내린 징계를 기억하고 제사장의 영역을 넘지 않고 선을 잘 지켰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여전히 부패했습니다.
백성들의 부패는 산당을 제사와 연결됩니다.

요담이 제거하지 않은 산당은 바알이나 아스다룻을 섬기는 곳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이 있음에도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변칙적인 장소를 가리킵니다.

백성들은 이 산당에서 이방 신앙과 여호와 신앙을 혼합시킨 형태의 제사를 드렸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러한 산당을 제거하지 않은 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하 27:6절을 보시면, “요담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바른 길을 걸었으므로 점점 강하여졌더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37절을 보시면, “그 때에 여호와께서 비로소 아람 왕 르신과 르말랴의 아들 베가를 보내어 유다를 치게 하셨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람 왕과 베가 연합군을 통해 유다를 치게 하신 이유는 요담이 산당 제사를 허용했고, 백성들은 산당 제사를 드리며 여전히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나 혼자 바른 길을 걷고 있나요?
함께 바른 길을 걷고 있나요?

나 혼자 바른 길을 걷기보다
함께 바른 길을 걷기를 소망합니다.

“1 르말랴의 아들 베가 제십칠년에 유다의 왕 요담의
아들 아하스가 왕이 되니
2 아하스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육 년간 다스렸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지 아니하고
3 이스라엘의 여러 왕의 길로 행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4 또 산당들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요담은 신앙안에서 자식 농사에 실패했습니다.
요담의 아들 아하스가 왕위를 이어받았는데 북 이스라엘 왕들처럼 우상숭배에 빠지고 산당 제사는 물론이거니와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끔찍한 일도 자행했습니다.

“5 이 때에 아람의 왕 르신과 이스라엘의 왕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싸우려 하여
아하스를 에워쌌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
6 당시에 아람의 왕 르신이 엘랏을 회복하여 아람에
돌리고 유다 사람을 엘랏에서 쫓아내었고 아람
사람이 엘랏에 이르러 거기에 거주하여 오늘까지
이르렀더라”

5절만 보면 아하스가 아람 왕 르신과 북 이스라엘 왕 베가 연합군과의 싸움에서 이긴 것으로 보입니다. 어떻게 우상 숭배하고 하나님을 진노하게 한 아하스 왕이 승리할 수 있을까 생각되지 않습니까?

5절은 포위된 상황을 이야기 한 것이고 역대하 28:5-7절을 보시면 이후 아하스가 대패한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역대하 28:5-7절>
“5 그러므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아람 왕의
손에 넘기시매 그들이 쳐서 심히 많은 무리를
사로잡아 다메섹으로 갔으며 또 이스라엘 왕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쳐서 크게 살륙하였으니
6 이는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라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유다에서 하루 동안에 용사
십이만 명을 죽였으며
7 에브라임의 용사 시그리는 왕의 아들 마아세야와
궁내대신 아스리감과 총리대신 엘가나를 죽였더라”

아하스 왕이 이렇게 하나님의 징계의 채찍을 맞았으면 납작 엎드려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야 마땅하건 만 아하스 왕은 앗수르 왕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대하28:16-27]
“16 그 때에 아하스 왕이 앗수르 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도와 주기를 구하였으니
17 이는 에돔 사람들이 다시 와서 유다를 치고 그의
백성을 사로잡았음이며
18 블레셋 사람들도 유다의 평지와 남방 성읍들을
침노하여 벧세메스와 아얄론과 그데롯과 소고 및
그 주변 마을들과 딤나 및 그 주변 마을들과 김소
및 그 주변 마을들을 점령하고 거기에 살았으니
19 이는 이스라엘 왕 아하스가 유다에서 망령되이
행하여 여호와께 크게 범죄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유다를 낮추심이라”

하나님이 낮추실 때는 납작 엎드려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하스 왕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앗수르 왕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을까요?

“20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이 그에게 이르렀으나
돕지 아니하고 도리어 그를 공격하였더라
21 아하스가 여호와의 전과 왕궁과 방백들의 집에서
재물을 가져다가 앗수르 왕에게 주었으나 그에게
유익이 없었더라”

도움을 청한 앗수르 왕이 아하스 왕을 공격했습니다. 아하스왕의 앗수를 왕에게 돈을 썼으나 아무 유익이 없었습니다.

이쯤 되면 회개할 만도 한데 아하스왕은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다메섹 신들을 찾았고 하나님께 더욱 범죄했습니다.

“22 이 아하스 왕이 곤고할 때에 더욱 여호와께
범죄하여
23 자기를 친 다메섹 신들에게 제사하여 이르되 아람
왕들의 신들이 그들을 도왔으니 나도 그 신에게
제사하여 나를 돕게 하리라 하였으나 그 신이
아하스와 온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였더라”

아하스는 망하는 길로 갔습니다.
더욱 하나님을 진노하게 했습니다.

“24 아하스가 하나님의 전의 기구들을 모아 하나님의
전의 기구들을 부수고 또 여호와의 전 문들을 닫고
예루살렘 구석마다 제단을 쌓고
25 유다 각 성읍에 산당을 세워 다른 신에게 분향하여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진노하게
하였더라”

아하스의 인생은 그렇게 마감했습니다.

“26 아하스의 남은 시종 사적과 모든 행위는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니라
27 아하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이스라엘
왕들의 묘실에 들이지 아니하고 예루살렘 성에
장사하였더라 그의 아들 히스기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하나님이 진노하실만한 일이 내겐 없나요?
하나님이 나를 낮추실 때 회개로 반응하고 있나요?
위기 가운데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나요?
하나님의 진노에 더욱 진노를 쌓고 있지는 않나요?

하나님이 낮추실 때,
회개하면 하나님께 겸손히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일독 : 고후 1-3장

댓글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