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 19:21-28절
“21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에게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처녀 딸 시온이 너를 멸시하며
너를 비웃었으며 딸 예루살렘이 너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었느니라
22 네가 누구를 꾸짖었으며 비방하였느냐 누구를
향하여 소리를 높였으며 눈을 높이 떴느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그리하였도다”
앗수르 왕의 교만에 대해 하나님이 비웃으셨습니다.
예루살렘이 머리를 흔들었다는 것은 좌우가 아닌 상하로 움직이는 것을 뜻합니다. 즉 앗수르 왕을 향한 멸시와 비웃음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뜻입니다.
앗수르 왕이 하나님을 꾸짖고 비방하고 소리를 높이고 눈을 높이 뜨는 교만을 보였기에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멸시와 비웃음을 당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조금만 힘이 있고 지식이 있고 능력이 있으면 자신이 천상천하 유아독존인줄 알고 교만해집니다.
그러나 교만의 끝은 패망입니다.
그 결과를 당사자만 모릅니다.
교만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합니다.
자신의 미래를 볼 수 없게 합니다.
사람에게 교만한 자는 하나님께도 교만합니다.
하나님께 교만한 자는 패망만 남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에게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나요?
앗수르 왕은 자신의 힘이 강력해서 이방 여러 민족을 점령하고 승리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일이었습니다.
“23 네가 사자들을 통하여 주를 비방하여 이르기를
내가 많은 병거를 거느리고 여러 산 꼭대기에
올라가며 레바논 깊은 곳에 이르러 높은 백향목과
아름다운 잣나무를 베고 내가 그 가장 먼 곳에
들어가며 그의 동산의 무성한 수풀에 이르리라
24 내가 땅을 파서 이방의 물을 마셨고 나의
발바닥으로 애굽의 모든 강들을 말렸노라
하였도다
25 네가 듣지 못하였느냐 이 일은 내가 태초부터
행하였고 옛날부터 정한 바라 이제 내가 이루어
너로 견고한 성들을 멸하여 무너진 돌무더기가
되게 함이니라”
근동 여러 나라의 패망은 앗수르 왕이 이룬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로 앗수르 왕은 그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였을 뿐입니다.
역사의 주인과 도구를 구별 못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앗수르 왕은 자신이 역사의 주인인 줄 알았습니다.
역사의 진정한 주인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내 삶의 주인도 오직 한 분 하나님뿐입니다.
우리는 주인되신 하나님께 쓰임받는 도구일뿐입니다.
어떤 일에 쓰임받고 계시나요?
선한 일에 쓰임받는 도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앗수르가 열방을 쉽게 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의 힘을 다 빼앗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26 그러므로 거기에 거주하는 백성의 힘이 약하여
두려워하며 놀랐나니 그들은 들의 채소와 푸른
풀과 지붕의 잡초와 자라기 전에 시든 곡초 같이
되었느니라”
하나님은 앗수르 왕의 행위와 하나님을 향한 분노와 교만한 말을 다 들으셨고 심판을 선언하였습니다.
“27 네 거처와 네 출입과 네가 내게 향한 분노를 내가
다 아노니
28 네가 내게 향한 분노와 네 교만한 말이 내 귀에
들렸도다 그러므로 내가 갈고리를 네 코에 꿰고
재갈을 네 입에 물려 너를 오던 길로 끌어
돌이키리라 하셨나이다”
만일 앗수르 왕의 말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무런 힘이 없으신 패망한 여러 민족의 신들과 같은 존재라면 갈고리를 앗수르 왕의 코에 꿰고 재갈을 입에 물리고 앗수르로 끌어 돌이키시겠다는 말은 허풍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셨습니다.
당시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한 앗수르 군대 18만 5천명이 하나님이 보낸 천사에 의해 하룻밤 사이에 다 송장이 되었습니다. 앗수르 왕은 갈고리에 코를 꿰인 것처럼 본국으로 돌아갔고 그곳에서 두 아들에게 의해 살해당합니다.
이것이 교만한 자의 비참한 최후입니다.
이 세상 어떤 사람이 자신의 미래를 장담할 수 있을까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미래는 오직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미래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고백하는 자가 겸손한 자입니다.
미래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인정하시나요?
그것을 인정하는 삶을 살고 계신가요?
교만의 끝은 패망이나 겸손의 끝은 소망입니다.
성경일독 : 딤후 1-4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