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43-51절

“43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예수를 제대로 만나면 예수의 제자가 됩니다.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사람은 상처를 주고 실망을 안겨 주지만
예수는 상처를 주거나 실망을 주시지 않습니다.

신앙 생활은 사람을 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보고, 하나님을 보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인한 상처와 실망으로 신앙을 잃어버리는 것만큼 큰 손해도 없습니다.

사단은 사람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을 무너뜨립니다.

인간은 두 종류의 사람밖에 없습니다.
사랑의 대상과 전도의 대상입니다.

사람에게 실망했다는 것은
사람을 너무 신뢰했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신뢰의 대상이 아닙니다.
신뢰의 대상, 믿음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입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모든 사람은 죄라는 병에 걸린 환자와 같습니다.

병원에서는 환자를 비난하거나 정죄하지 않습니다. 비난과 정죄의 대상이 아닌 치료와 돌봄의 대상으로 봅니다.

사람을 어떤 존재로 인식하느냐에 따라
대응이 다르고 받는 타격이 다릅니다.

모든 사람을 환자로 보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치료와 돌봄이 필요한 대상이구나!
라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따를 분은 오직 예수뿐입니다.

예수는 죄인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죄를 용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눅5:31-32]
“3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겉 모습이 대단하면 자신이 건강한 줄 압니다.
모든 사람은 죄에 병든 자입니다.
모든 사람은 예수가 필요합니다.
모든 죄인은 회개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람 때문에처 상처받고 실망한 적이 있나요?

사람 때문에 신앙을 손해보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수를 제대로 만나면 치유 받고 변화됩니다.
예수를 주변 사람에게 전하게 됩니다

예수를 만나 제자가 된 빌립은 나다나엘을 찾아가 예수를 전했습니다.

“44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전도해도 거부당할 수 있습니다.
나다나엘도 빌립의 전도에 거부의사를 표했습니다.

“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거부당할 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와서 보라”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와서 예수를 보라고 했습니다.

많은 경우 와서 보라는 것이 교회이거나 교인들인 경우가 있습니다. 교회와 교인은 불완전합니다.

신앙 생활은 사람을 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보고, 하나님을 보고 하는 것입니다.

전도할 때에 예수를 소개해야 합니다.

‘와서 예수를 만나 보라’고 해야 합니다.

전도의 대상에게 무엇을 소개하고 있나요?

나다나엘이 예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보자 그의 속에 간사한 것이 없음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의 성품을 꿰뚫고 계셨습니다.

나다나엘이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반문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나다나엘이 빌립을 만나기 전에 그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 보셨다고 말씀합니다.
신적능력으로 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도 잘 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을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나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예수를 만나면 사람이 변합니다.
나다나엘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나다나엘은 예수의 말씀을 듣자 마자 예수님의 신성을 느꼈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메시야 왕으로 고백합니다.

너무나 감격스러운 장면이 아닐 수 있습니다.

내가 예수께 인도한 사람이 예수를 만나고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왕으로 인정하고 고백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큼 감격스러운 일도 없습니다.

한 영혼이 구원받고 지옥형벌에서 벗어나 천국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만큼 값진 일이 또 어디에 있을까요?

한 영혼은 천하보다 귀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예수께 인도하여 구원받은 사람이 있나요?

“5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증거를 보여주지 않으면 잘 믿으려하지 않습니다.

나다나엘이 예수께서 자신이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다는 말씀을 듣고 믿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본성을 아시는 예수님도 제자들이 나가서 전파할 때에 함께하사 표적으로 그들의 말이 사실임을 증거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에게 앞으로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앞으로 나다나엘이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놀라운 사건들을 많이 보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영적인 눈이 열립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들이 보입니다.

“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하늘이 열립니다.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에 하늘이 열렸습니다(마3:15-17).

스데반도 순교하기 직전에 하늘이 열리고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행7:55,56).

하늘이 열린다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교통하는 것을 말합니다.

야곱도 들판에서 돌베개를 하고 누었을 때 꿈에 사닥다리가 하늘에 닿은 것과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았고 하늘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하늘이 열리는 축복보다 귀한 축복은 없습니다.

하나님과 교통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은혜는 비교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인자 위에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 내리락한다는 것은 예수께서 계속적으로 하나님과 교류하면서 큰 영광 가운데 메시야로서의 사역을 수행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늘이 열리셨나요?

하나님과 영적이 교통을 하고 계신가요?

오늘도 하나님과 영적 교제를 나누는 축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일독 : 삼하 13-1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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