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53:1-9절
“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9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1.
참된 신앙은 성경이 전하는 대로 믿는 신앙입니다.
“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여호와의 팔은 구원의 팔을 말합니다.
여호와의 구원이 여호와의 종의 비천한 삶과 죽음을 통해서 이루질 것임을 말해주는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종의 고난과 죽음을 통한 구원이 예언되었음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난받는 종으로 오신 메시야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자신이 바라는 메시야 상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전하는 메시야도 자신이 생각하는 메시야와 일치하지 않으면 거부하는 것입니다.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고
믿고 싶은 대로 믿는 신앙입니다.
성경 중심이 아닌 나 중심의 신앙입니다.
신앙은 성경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내 생각위에 세워진 신앙은 반드시 무너집니다.
참된 신앙은 성경이 전하는 대로 믿는 신앙입니다.
나의 신앙은 어디위에 세워져 있나요?
2.
예수님은 철저히 거부당하고 버림받으셨습니다.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세상은 강력한 메시야를 원했으나
예수님은 연한 순같은 목수의 아들로 오셨습니다.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다고 무시와 천대를 받던
갈릴리 나사렛 출신으로 자라셨습니다.
세상은 카리스마 있는 왕의 아들 메시야를 원했으나
예수님은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는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말구유에 태어나셨고
머리둘 곳이 없을 정도로 가난하셨고
죄수의 몸으로 수난을 당하셨고
저주의 상징인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이러한 메시야는 유대인들이 기대한 메시야가
아니었습니다.
그로인해 예수는 사람들에게 철저히 버림받으셨습니다.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사람들은 예수님이 받은 고난이 우리의 죄악과 질고를 지고 당한 슬픔과 고난인 것을 몰랐습니다.
예수가 신성모독과 성전 모독, 율법을 범한 죄로 마땅히 십자가 처형을 받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무지한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멸시(업신여김)와 간고(가난과 고생)와 질고(질병과 고통)와 슬픔과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철저히 낮은 자로 오셨는데
우리는 그러한 예수님을 철저히 거부했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요?
예수는 내가 기대한 메시야 인가요?
예수의 고난이 나를 위한 고난으로 믿어지시나요?
3.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고난받으셨습니다.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예수님의 찔림과 상함은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징계와 채찍은 우리의 평화와 나음때문입니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우리는 제멋대로 각기 죄의 길을 갔으나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우리 죄악을 담당시키셨습니다.
속죄와 의롭다고 칭함받는 칭의는 6절의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주어집니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예수님은 부당한 학대와 압제로 괴로울 때도
십자가의 고난을 통과해야 우리에게 구원을 줄 수 있음을 아셨기에 침묵하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무 저항없이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입을 열지 않으셨습니다.
“8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예수님께서 곤욕과 심문과 고난을 받는 모습을 보고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의 허물을 위한 형벌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9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었었으며’란
예수님이 행악자들과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행악자들 중의 하나로 여겨진다는 뜻입니다.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라는 말씀이
고난의 종의 예언과 어울리지 않는 결말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실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당국자들에 의해 행악자들과 함께
그의 시체가 버려질 상황이었으나 예수님은 행악자들과 달리 죄가 없으신 분으로 대속의 죽음을 당하신 것이니 행악자들과 달리 부자의 무덤에 장사될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예수님 당시 십자가형은 가장 흉악한 자에게 내려지는 형벌로 이들은 무덤에 묻히지도 못하고 들판에 버려져 짐승의 밥이 되게 둠으로 죽은 자에 대한 최대의 모욕을 안겨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억울하게 죄인으로 선고되어 비참하게 죽으셨으나,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부자가 자신을 위해 만들어 두었던 새 동굴 무덤에 최대한의 예우를 갖추어 예수님을 매장하게 하심으로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의 죄를 대속한 죽음으로 예수는 다른 행악자들과 다른 메시야로서 예우받게 하셨습니다.
700년 전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은
요셉에 의해 성취되었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형벌 받으심을 기념하는 성 금요일에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을 깊이 묵상하는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일독: 대상 13-16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