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26:59-68절

“59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거짓 증거를 찾으매”

가장 공의로워야할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죄도 정하지 않고 즉 영장도 없이 예수를 체포하고, 예수를 죽이겠다는 목적을 이루고자 거짓 증거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죄 없으심만 더욱 드러났습니다.

“60 거짓 증인이 많이 왔으나 얻지 못하더니 후에 두
사람이 와서”

마가복음 14장 56절에서는 “이는 예수를 쳐서 거짓 증언 하는 자가 많으나 그 증언이 서로 일치하지 못함이라” 그랬습니다. 거짓 증거가 일치할 리가 없습니다. 더욱이 예수님은 의롭고 죄를 짓지 않으셨으니 일치할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후에 두 사람이 와서 예수님이 성전을 모독했다고 고발합니다.

“61 이르되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 하니
62 대제사장이 일어서서 예수께 묻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
하되”

막14:58-59절을 보시면 “58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 동안에 지으리라 하더라 하되
59 그 증언도 서로 일치하지 않더라” 그랬습니다.

예수님은 성전 된 자신의 육체를 가리켜 하신 말씀으로 자신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을 저들이 오해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예수님을 성전 파괴범으로 몰아갑니다. 그러나 그들의 증언도 서로 일치하지를 않습니다.

증언이 통하지 않자 대제사장이 직접 나섭니다.

“63 예수께서 침묵하시거늘 대제사장이 이르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대제사장의 질문에 예수님이 그렇다라고 답하십니다.

“6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65 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그가
신성모독 하는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신성모독 하는
말을 들었도다”

예수님의 대답은 그들의 기준으로는 신성모독 죄에 해당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예수님이 신성 모독을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신성 모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상황입니까?

당시 신성모독은 사형죄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은 예수님에 대한 처벌을 묻습니다.

“66 너희 생각은 어떠하냐 대답하여 이르되 그는
사형에 해당하니라 하고”

예수에 대한 죄와 형벌이 확정되자 이들은 곧바로 예수를 죄인 취급하며 예수님을 희롱하고 모욕하고 폭력을 가합니다.

“67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68 이르되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더라”

하나님과 동등한 권세와 능력을 가지신 예수님을, 창세 전에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계시고 친히 말씀이 되어 온 우주를 만드신 제 2위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죄인 취급하며 얼굴에 침을 뱉고 주먹으로 치고 손바닥으로 때립니다.

예수님이 이런 모욕을 받으심이 마땅한가요?

감히 하나님의 아들에게 이런 행위를 할 수 있을까요?

모르니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정말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았더라면 예수 앞에 무릎을 꿇고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했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에 첫 말씀이 자신을 희롱하고 조롱하고 멸시하던 자들을 향한 기도였습니다.

[눅23: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예수님의 사랑의 끝은 어디일까요?

예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은 끝을 헤아릴수 없을 만큼 깊고 크고 높습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모욕과 멸시와 폭력은 우리가 받아야 마땅합니다. 예수님을 희롱하며 폭력을 행사했던 저들이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모욕을 다 받으시고 참으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우리의 죄를 사하시려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려고….
우리를 영원한 지옥의 형벌에서 구원하시려고…
우리에게 영적인 눈을 뜨게 해 주시려고…
우리에게 영원한 가치가 무엇인지 보게 해 주시려고…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살게 해 주시려고…
등등

예수님은 우리에게 주실 이 엄청난 축복들을 바라보시며 기뻐하셨고 이 기쁨 때문에 십자가의 고통을 참으셨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히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모진 고난을 참아 내셨습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나를 살리고자 십자가의 고난을 참으시고 부끄러움을 게으치 않으신 예수님만 바라보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나를 위해 모진 고난을 견뎌내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하루를 보내시기를 축복합니다.

성경일독 : 삼하 7-9장

댓글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