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24:16-22절
“16 다윗이 사울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마치매 사울이
이르되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목소리냐 하고
소리를 높여 울며”
다윗이 사울 왕의 겉 옷자락을 가만히 자르고 그 옷 자락을 보여주며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자 사울 왕이 다윗에게 “내 아들 다윗아”라고 부르며 소리 높여 웁니다. 다윗이 사울의 양심에 호소하자 사울이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감동받은 사울이 다윗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17 다윗에게 이르되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18 네가 나 선대한 것을 오늘 나타냈나니
여호와께서 나를 네 손에 넘기셨으나
네가 나를 죽이지 아니하였도다
19 사람이 그의 원수를 만나면 그를 평안히 가게
하겠느냐 네가 오늘 내게 행한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
사울 왕의 고백만 들으면 사울 왕이 진심으로 회개한 것처럼 보입니다. 다윗을 죽이는 일을 그만 둘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26장에가면 사울 왕이 다시 다윗을 죽이려고 삼천명을 데리고 십 광야로 가는 것을 봅니다.
[삼상26:1-2]
“1 십 사람이 기브아에 와서 사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다윗이 광야 앞 하길라 산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매
2 사울이 일어나 십 광야에서 다윗을 찾으려고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 명과 함께 십 광야로
내려가서”
사울 왕이 다윗의 행동에 양심의 찔림을 받고 소리 높여 울고 다윗에게 너는 나보다 의롭다고 말한 것을 그 당시에는 진심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 왕의 본심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진실한 회개는 눈물과 입술의 회개가 아니라 행동의 변화입니다. 이전의 삶을 떠나는 것이 회개입니다.
사울의 경우 다윗을 죽이기 위해 쫓아다니는 그만두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럴싸한 말과 눈물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럴싸한 말보다 행동의 변화가 더 중요합니다.
17-19절의 사울 왕의 말이 얼마나 멋져보입니까?
그러나 이보다 행동의 변화가 중요합니다.
진심으로 뉘우치고 바뀌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의 삶에 행동의 변화가 있나요?
사울 왕은 다윗이 왕이 될 것을 인정합니다.
“20 보라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견고히 설 것을 아노니”
그러면서 다윗에게 후손의 안전을 부탁합니다.
“21 그런즉 너는 내 후손을 끊지 아니하며 내 아버지의
집에서 내 이름을 멸하지 아니할 것을 이제
여호와의 이름으로 내게 맹세하라 하니라”
다윗이 사울에게 맹세하고 서로 헤어집니다.
“22 다윗이 사울에게 맹세하매 사울은 집으로
돌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요새로
올라가니라”
이 장면에서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사울 왕이 진심으로 회개했다면 다윗을 왕궁으로 데려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각자의 길을 갑니다.
사울과 다윗의 길이 달랐던 것입니다.
표면적 화해보다 내면적 화해가 중요합니다.
진실한 화해는 내면의 변화를 가져오지만
입술의 회개는 표면적 변화만 보일 뿐입니다.
내 삶에 내면적 변화가 있나요?
이후 선지자 사무엘이 죽음을 맞이합니다.
“25:1 사무엘이 죽으매 온 이스라엘 무리가 모여 그를
두고 슬피 울며 라마 그의 집에서 그를
장사한지라 다윗이 일어나 바란 광야로
내려가니라”
죽음은 한 사람의 인생 결산의 자리입니다.
죽음을 맞이할 때 진심으로 슬퍼하며 울어줄 사람이 많다는 것은 대단히 축복된 일입니다. 그만큼 인생을 값지게 살아왔다는 것이고 다른 사람의 삶에 선한 영향을 끼치고 살아왔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죽음에 진심으로 울어줄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진심은 진심으로 돌아옵니다.
매사에 모든 사람에게 진심이길 바랍니다.
성경일독 : 에스더 8-10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