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1:12-22절

“12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여 너희에게는 관계가
없는가 나의 고통과 같은 고통이 있는가 볼지어다
여호와께서 그의 진노하신 날에 나를 괴롭게 하신
것이로다”

어떤 이의 고통이 나와는 무관한 일로 여겨져 고통을 함께 나누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폐망과 고통을 지나가는 사람의 시선으로만 바라보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말합니다.

“너희에게는 관계가 없는가?”
“나의 고통과 같은 고통이 있는가 볼지어다”

성경은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12:15)고 말씀합니다.

다른 이가 당한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될 수도 있습니다.

폐허의 고통보다 무관심의 고통이 더 큽니다.

무안 공항 비행기 사고로 가족을 잃은 이들의 슬픔에 함께 동참하며 주님의 위로와 회복을 위해, 사고 수습과 원활한 행정적 절차적 도움이 잘 이루어져서 유가족들의 슬픔이 더 깊어지지 않고 회복의 길로 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대한민국의 정국 혼란으로 많은 국민들의 마음에 멍이 들었는데 정의와 공의가 올바르게 시행되고 법과 질서가 바로 세워짐으로 다시 일어서는 대한민국이 되도록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주위를 둘러보고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이 보일 때 고통을 함께 나누며 위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른 이의 고통이 나에게 고통으로 다가오시나요?

“13 높은 곳에서 나의 골수에 불을 보내어 이기게
하시고 내 발 앞에 그물을 치사 나로 물러가게
하셨음이여 종일토록 나를 피곤하게 하여
황폐하게 하셨도다”

위 구절은 주님이 고통을 주셨다는 고백입니다.
본절의 ‘나’는 예루살렘 성을 의인화한 것입니다.

“14 내 죄악의 멍에를 그의 손으로 묶고 얽어 내 목에
올리사 내 힘을 피곤하게 하셨음이여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자의 손에 주께서 나를 넘기셨도다”

예루살렘의 패망의 고통은 죄의 결과라고 말합니다.

“15 주께서 내 영토 안 나의 모든 용사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고 성회를 모아 내 청년들을
부수심이여 처녀 딸 유다를 내 주께서 술틀에
밟으셨도다”

죄는 우리를 무력화시킵니다.
미래의 주역인 청년들의 삶을 부숴버립니다.
포도가 술틀에 밟혀서 그 즙이 흘러나오는 것처럼 유다 군대와 백성들의 피가 예루살렘을 적셨습니다.
죄는 미래의 삶을 무침히 파괴합니다.

“16 이로 말미암아 내가 우니 내 눈에 눈물이 물 같이
흘러내림이여 나를 위로하여 내 생명을 회복시켜
줄 자가 멀리 떠났음이로다 원수들이 이기매 내
자녀들이 외롭도다”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무참히 짓발힐 때,
도와주는 이가 없어서 외로움은 극에 달했습니다.
회복의 기대마져 보이지 않아 눈물만 흘렀습니다.

“17 시온이 두 손을 폈으나 그를 위로할 자가 없도다
여호와께서 야곱의 사방에 있는 자들에게
명령하여 야곱의 대적들이 되게 하셨으니
예루살렘은 그들 가운데에 있는 불결한 자가
되었도다”

예루살렘이 멸망당할 때, 위로하는 이 하나 없었고 모두가 대적자들 뿐이었습니다. 불결하다고 피하기만 했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징벌이었습니다.

죄는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를 파괴합니다.

죄를 어느 정도로 심각하게 대하고 있나요?

죄를 짓기 전에 죄의 결과의 무게를 달아보시기 바랍니다.

“18 여호와는 의로우시도다 그러나 내가 그의 명령을
거역하였도다 너희 모든 백성들아 내 말을 듣고
내 고통을 볼지어다 나의 처녀들과 나의 청년들이
사로잡혀 갔도다”

하나님의 심판은 과하지 않은 의로운 심판이십니다.
예루살렘이 폐허가 된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기 때문입니다.

실패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죄의 결과의 고통을 똑똑히 지켜 보아야 합니다.

“19 내가 내 사랑하는 자들을 불렀으나 그들은 나를
속였으며 나의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그들의
목숨을 회복시킬 그들의 양식을 구하다가 성
가운데에서 기절하였도다”

‘내 사랑하는 자들’이란 위기에 처한 유다가 도움을 청했던 애굽과 주변 동맹국들을 말합니다. 유다가 어려움에 처할 때 다들 피했습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양식을 구하다가 기절했습니다.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 기근의 심함을 말해줍니다.

“20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내가 환난을 당하여 나의
애를 다 태우고 나의 마음이 상하오니 나의 반역이
심히 큼이니이다 밖에서는 칼이 내 아들을 빼앗아
가고 집 안에서는 죽음 같은 것이 있나이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예루살렘이 당한 환난을 애타하며 유다의 반역을 나의 반역처럼 여기고 하나님 앞에 통회하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합니다.

예레미야는 비난보다 함께 아파하고 유다를 위해 하나님 앞에 중보기도합니다.

“21 그들이 내가 탄식하는 것을 들었으나 나를
위로하는 자가 없으며 나의 모든 원수들은 내가
재난 당하는 것을 듣고 주께서 이렇게 행하신 것을
기뻐하나이다 그러나 주께서 그 선포하신 날을
이르게 하셔서 그들이 나와 같이 되게 하소서”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 위로하기보다 기뻐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가까운 형제 나라들인 암몬 , 모압, 에돔입니다. 암몬과 모압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예이고, 에돔은 야곱의 형 에서의 후예입니다.

형제의 아픔을 위로하기보다 즐거워하는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22 그들의 모든 악을 주 앞에 가지고 오게 하시고
나의 모든 죄악들로 말미암아 내게 행하신 것 같이
그들에게 행하옵소서 나의 탄식이 많고 나의
마음이 병들었나이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두 가지를 구했습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을 기뻐한 이들에게는 준엄한 심판을,
패망한 예루살렘에게는 하나님의 회복을!

“나의 탄식이 많고 나의 마음이 병들었나이다”라고 고백은 예루살렘의 회복을 구하는 것입니다.

다른 이의 고통을
즐거워하는 이들에게는 고통이 기다리고 있고, 탄식하며 아파하는 이들에게는 회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느 편에 서 계신가요?

고통을 함께 나누는 쪽인가요?
남의 고통을 즐거워하는 쪽인가요?

하나님 앞에서 마음 관리를 잘 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일독 : 창세기 4-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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