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3:55-66절

“55 여호와여 내가 심히 깊은 구덩이에서 주의 이름을
불렀나이다”

심히 깊은 구덩이에 빠져서 혼자 힘으로는 나올 수 없을 때 유일한 희망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평상시에 주님은 우리의 이름을 자주 부르십니다.
주의 부르심에 바로 응답하며 사는 사람들은 평안을 주시기에 위급한 상황에 주를 부를 일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평상시에 주님의 부르심을 외면하면 유다 백성들처럼 심히 깊은 구덩이에서 주를 부르게 됩니다.

심히 깊은 구덩이는 유다에게 희망의 자리입니다.

화려한 집보다 심히 깊은 구덩이가 더 낫습니다.
화려한 집에서는 주를 부르지 않고 외면했는데
깊은 구덩이에서는 주를 간절히 부르기 때문입니다.

주를 부르는 자리가 축복의 자리입니다.

지금 나의 자리는 주를 부르는 자리인가요?

위급한 상황에서 주를 부르며 기도할 때,
하나님의 들으심과 응답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56 주께서 이미 나의 음성을 들으셨사오니 이제 나의
탄식과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가리지 마옵소서”

과거의 기도의 응답을 떠올리며 간구해야 합니다.

“57 내가 주께 아뢴 날에 주께서 내게 가까이 하여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나이다”

주를 부르면 주가 가까이 하시고 두려워 말라하십니다.

예레미야는 아무 잘못없이 마른 구덩이에 던져졌던 과거를 회상하며 그 때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원통함을 풀어주시고 생명을 건져 주셨음을 기억합니다.

“58 주여 주께서 내 심령의 원통함을 풀어 주셨고
내 생명을 속량하셨나이다”

우리가 기도하면 주가 들으십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주가 가까이 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주가 원통함을 풀어주십니다.

이러한 기도의 경험을 가지고 계신가요?

“59 여호와여 나의 억울함을 보셨사오니
나를 위하여 원통함을 풀어주옵소서
60 그들이 내게 보복하며 나를 모해함을 주께서
다 보셨나이다
61 여호와여 그들이 나를 비방하며 나를 모해하는
모든 것
62 곧 일어나 나를 치는 자들의 입술에서 나오는
것들과 종일 나를 모해하는 것들을 들으셨나이다
63 그들이 앉으나 서나 나를 조롱하여 노래하는 것을
주목하여 보옵소서
64 여호와여 주께서 그들의 손이 행한 대로 그들에게
보응하사
65 그들에게 거만한 마음을 주시고 그들에게 저주를
내리소서
66 주께서 진노로 그들을 뒤쫓으사 여호와의 하늘
아래에서 멸하소서”

예레미야는 멸절의 위기에 빠진 유다에 대한 구원을 간구한 후 원수 바벨론에 대한 심판을 구합니다.

바벨론은 범죄한 유다 백성을 치는 하나님의 징계의 도구였지만, 바벨론 자체로 보면 그들은 교만했고, 폭력적이었고, 잔인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바벨론의 교만과 폭력과 잔인함에 대해 심판하실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이점에 대해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약 2:13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바벨론은 긍휼없는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입술에 비방, 모해(꾀를 써서 남을 해침), 저주 대신에 긍휼이 있기를 바랍니다.

바벨론을 향한 예레미야의 65절과 66절의 기도는 악의적 기도같아 보이나 하나님의 공의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유다는 B.C. 586년에 바벨론에 멸망했고, 바벨론은 B.C. 539년에 메대와 바사의 연합군에 멸망했습니다.
예레미야의 기도는 47년만에 응답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공의 앞에 겸손하기를 바랍니다.

나의 입술과 말에 무엇이 가득한가요?

겸손과 긍휼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성경일독 : 창세기 22-2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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