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 6:1-9절
“1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과 그
나머지 우리의 원수들이 내가 성벽을 건축하여
허물어진 틈을 남기지 아니하였다 함을 들었는데
그 때는 내가 아직 성문에 문짝을 달지 못한
때였더라”
5장에서 경제적 어려움과 귀족들의 고리대금 착취로 인한 유다 백성들의 내부의 원망을 느헤미야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리더십과 솔선수범으로 지혜롭게 해결하며 성벽 재건이 막바지 단계에 이르자 외부의 적들이 느헤미야를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밉니다.
성문 문짝만 달면 성벽 재건이 마무리되는 단계에 이른 것입니다. 이럴 때 방심하게 쉽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기 직전에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성도는 죽을 때까지 사명자입니다.
성도에게 영적 방심은 금물입니다.
산발랏과 게셈이 느헤미야에게 만남을 요청합니다.
“2 산발랏과 게셈이 내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오노 평지 한 촌에서 서로 만나자 하니
실상은 나를 해하고자 함이었더라”
겉으로는 화해의 표시로 만나자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느헤미야를 이스라땅 밖으로 유인하여 암살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대적들의 음모를 간파한 느헤미야는 만남을 거절합니다.
“3 내가 곧 그들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이르기를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어찌하여
역사를 중지하게 하고 너희에게로 내려가겠느냐
하매”
일에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시간 사용의 원칙은 중요한 일을 먼저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일을 먼저 하지 않으면 급한 일만 하게 됩니다. 그래서 쫒기는 삶, 불안한 삶을 살게 됩니다.
내게 지금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을 우선순위에 두고 집중해야 합니다.
그럴 때 삶에 질서가 잡힙니다.
중요한 일과 급한 일을 구분하며 우선순위를 따라 행동하고 있나요?
내 삶에 질서가 있나요?
마음이 복잡한 것은 내 삶에 질서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복잡할 때, 말씀 중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마음의 중심에 모실 때 질서가 잡힙니다.
느헤미야가 거절하자 대적들은 네 번이나 만남을 요청합니다.
“4 그들이 네 번이나 이같이 내게 사람을 보내되
나는 꼭 같이 대답하였더니”
그 때마다 느헤미야의 대답을 동일했습니다.
보통 한 번 두번 거절했는데 상대방이 세 번 네 번 요구하면 귀찮아서라도 요구에 응하게 됩니다.
느헤미야는 네 번 모두 동일한 대답으로 거절했습니다.
단호할 땐 단호해야 합니다.
나에게 이러한 단호함이 있나요?
느헤미야가 계속 거절하자 산발랏은 다른 방법으로 공략합니다.
“5 산발랏이 다섯 번째는 그 종자의 손에 봉하지 않은
편지를 들려 내게 보냈는데”
당시 공식 문서는 변조를 막고 문서의 신빙성을 보증하기 위해 양피지 등에 기록된 뒤 끈으로 묶여 인장으로 날인하여 봉한 후에 보냈습니다.
그런데 산발랏 일당은 봉하지 않은 편지를 종자의 손에 들려 보내며 느헤미야가 유다의 왕이되려한다는 내용이 백성들에게 알려져 나쁜 여론을 형성하여 느헤미야가 자신들에게 나오지 않으면 안되게 하려고 시도한 것입니다.
“6 그 글에 이르기를 이방 중에도 소문이 있고
가스무도 말하기를 너와 유다 사람들이 모반하려
하여 성벽을 건축한다 하나니 네가 그 말과 같이
왕이 되려 하는도다
7 또 네가 선지자를 세워 예루살렘에서 너를 들어
선전하기를 유다에 왕이 있다 하게 하였으니 지금
이 말이 왕에게 들릴지라 그런즉 너는 이제 오라
함께 의논하자 하였기로”
우리의 대적들은 우리가 넘어질 때까지 공격합니다.
그러니 영적 긴장을 늦춰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소문에 약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쉽게 흔들립니다.
소문은 진실앞에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합니다.
진실한 사람은 소문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느헤미야는 산발랏의 도발에 당당했습니다.
“8 내가 사람을 보내어 그에게 이르기를 네가 말한 바
이런 일은 없는 일이요 네 마음에서 지어낸 것이라
하였나니”
느헤미야는 자신이 아닥사스다 왕을 배신하고 유다의 왕이되려 한 일이 없기에 그런 일은 없는 일이라고 당당히 말합니다.
떳떳한 사람은 누구 앞에서든 당당합니다.
사람들의 소문에 기대어 움직이거나
사람들의 소문을 확인없이 퍼나르는 것은
성도의 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소문에 많이 흔들리는 편인가요?
내면의 단단함으로 잘 버티는 편인가요?
느히미야는 대적들의 의도를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9 이는 그들이 다 우리를 두렵게 하고자 하여
말하기를 그들의 손이 피곤하여 역사를 중지하고
이루지 못하리라 함이라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하였노라”
적의 의도를 파악하면 쉽게 휘말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산발랏의 무고(사실이 아닌 일을 거짓으로 꾸미어 해당 기관에 고소하거나 고발하는 일)가 아닥사스다왕에 의해서 받아들여질 경우 느헤미야는 곤란한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느헤미야가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하였노라”
느헤미야는 하나님을 의지히고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손을 힘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계신가요?
소문에 당당할 수 있는 힘과
내면이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성경일독 : 룻 1-4장